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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16세기 사행록

보진당연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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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록 정보에 대한 내용
사행록 정보 테이블
제목 보진당연행일기(葆眞堂燕行日記) 지은이 소순(蘇巡)
사행당시직급 자제군관(子弟軍官) 기록연대 중종28
기록언어

『보진당연행일기(葆眞堂燕行日記)』는 소순이 1533년(중종 28) 명 가정제(嘉靖帝)의 황태자 탄생을 축하하는 진하사절의 자제군관이 되어 북경에 다녀오면서 적은 일기이다. 일반적으로 한양에서 시작하는 사행록과 달리 전라도 익산에서부터 시작된다. 익산의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있던 가운데 숙부의 북경에 데려가고 싶다는 편지가 도착하였고, ‘길이 멀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함께 가겠다는 편지를 숙부에게 보낸다. 익산 지역의 집안사람들과 일일이 이별의 정을 나누고 한양에 올라와 사행에 합류하고 있다.
한양에서 의주에 이르는 노정은 주로 지방관들의 접대가 화제를 이룬다. 숙소 및 각 지역의 명승지에서 기녀들과 함께 술자리를 했고, 크게 취했다는 기록이 여럿 나온다. 이런 흥성스러운 분위기는 압록강 도강에서의 이별과 도강 후 송참(松站)에서 만난 동지사 임추(任樞, 1482~1534)의 영구(靈柩)를 만나면서 분위기가 잠시 반전된다.(임추는 1533년 동지사(冬至使)로, 아들은 서장관으로 함께 명나라에 파견되는 영광이 있었지만, 귀환 중에 순직하였다.) 이후 북경에 이르기까지 여행 노정의 유명한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이 체험을 간단히 기록하였다. 북경의 기록은 빼어난 문인이었던 숙부 소세양과 함께 명나라 문인ㆍ관료들과 함께한 시문(詩文) 교류와 사귐, 야인(野人)과 달자(㺚子)와 유구(琉球) 등 이민족 사신들에 대한 관찰, 북경 시내 명소 관람 등이 주를 이룬다.
『보진당연행일기』는 그의 후손들인 학규(學奎), 진덕(鎭德), 병관(秉寬) 등에 의해 1934년 목활자로 인쇄되어 간행되었다. 후손 소학규의 서문, 소순의 일기 본문, 사행 참가자들을 적은 「동행록(同行錄)」, 소순의 「묘갈명(墓碣銘)」, 후손 소진덕과 소병관의 발문 순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