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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17세기 사행록

서계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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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록 정보에 대한 내용
사행록 정보 테이블
제목 서계연록(西溪燕錄) 지은이 박세당(朴世堂)
사행당시직급 서장관(書將官) 기록연대 현종9
기록언어

『서계연록(西溪燕錄)』은 박세당(朴世堂)이 1668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將官)이 되어 이듬해 봄까지 북경을 다녀온 체험을 기록한 일기체 기록이다. 1668년 11월 21일 압록강을 건너는 것을 시작으로, 1669년 2월 19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에 도착하기 까지의 약 3개월간의 체험을 하루도 빠짐없이 적고 있다. 본래 서장관은 날마다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하여 귀국한 뒤에 승문원에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박세당은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박세당의 연행록이 갖는 특징적인 면은 세 가지이다.
첫째, 요양(遼陽)에서 심양(瀋陽)을 거쳐 신민(新民)으로 이어지는 노정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쓰인 요양(遼陽)경가장(耿家庄) → 우가장(牛家庄) → 반산(盤山)을 거쳐 광녕(廣寧)에 이르는 노정을 따른 것이다. 1665년부터 심양에 들러 성경봉천부에 공물의 일부를 납입하는데, 이 연행에서는 심양의 관리들의 요동의 신성(新城)까지 나와 공물을 받아가고 있다.
둘째, 연행 노정의 지리와 역사에 대한 고증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봉황산(鳳凰山)의 석성을 안시성(安市城)으로 여기는 것, 팔도하(八渡河)의 위치, 고령(高嶺)을 회령령(會寧嶺)을 잘못 부르는 것, 산해관(山海關)의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 편액을 진(秦)나라 이사(李斯)의 작으로 여기는 것 등을 바로 잡았다.
셋째,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 끌려온 포로를 만나는 등 전쟁의 상흔이 보인다. 연산관에서는 과천(果川)에 살면서 선릉(宣陵)을 지키는 군졸이었던 포로, 진자점(榛子店)에서는 한양과 개성에서 끌려온 2명의 여인들을 만나보고 있다.
박세당은 『서계연록』 외에 「사연록(使燕錄)」을 남기고 있다. 문집인 『서계집』에 실려있고, ‘자무신동지기유춘(自戊申冬至己酉春)’이라 부제하여 1668년 동지부터 1669년 봄까지의 시작임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정사인 이경억(李慶億)와 나눈 시가 많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