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16세기 사행록

석당공연행록
위로 이동 |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사행록 정보에 대한 내용
사행록 정보 테이블
제목 석당공연행록(石塘公燕行錄) 지은이 권협(權悏)
사행당시직급 정사(正使) 기록연대 선조30
기록언어 한문

『석당공연행록(石塘公燕行錄)』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고급사(告急使)로 파견된 권협(權悏 : 1542~1618)이 의주(義州)에서 출발하여, 북경(北京)에서 명나라 원군 파병을 요청하고 화약 및 활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료를 구입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의주로 돌아오기까지의 기록한 일기체 기행문이다.
고급사(告急使)란 조선의 긴급한 일[急]을 명나라에 알리는[告] 사행을 말한다. 명나라와 일본의 화의(和議)가 결렬되자, 1597년 1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 1만 5천명이 부산에 상륙하자 조선은 명나라에 추가 원군을 요청한다. 권협은 주문사(奏聞使) 정기원(鄭期遠)의 뒤를 이어 원군을 요청하는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권협은 보병(步兵)을 위주로 한 원군과 군량 조달을 약속받았으며, 명나라 조정으로부터 은자(銀子)를 지원받아 화약의 원료인 염초(焰硝)와 유황(硫黃), 활의 재료인 각궁(角弓)과 우근(牛筋: 소의 힘줄) 등의 군용(軍用) 물자를 현지에서 구입하여 돌아왔다.
평화로운 시기의 사행기록이 관광(觀光)과 지식인들과의 교유(交遊)가 주를 이루는데 반해, 『석당공연행록』은 사행 외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특히 북경의 병부(兵部)에서 원군에 대한 논의 과정을 자세히 언급함으로써 당시 재침한 왜구의 현황과 이에 대한 조선의 대처, 명나라의 조선 지원 상황이 사실대로 잘 수록되어 있다.
또한 무역의 구체적인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사신의 접대를 맡은 제독 이두(李杜)는 조선 역관들이 거래를 제대로 못해 황제가 내린 은자[조선 지원금]를 낭비한다고 책망하면서, 옥하관에 시장을 열어[開市] 자신의 감독 하에 물건을 사들이게 했다. 옥하관 앞에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지만, 제독 이두는 자신과 잘 아는 상인들만 들여보냈다. 그렇게 구입된 물건을 꼼꼼히 살펴본 권협은 불량품이 있으니 정밀하게 골라 구입해 줄 것을 부탁했으나, 제독 이두는 권협에게 전에 왔던 사신처럼 멋대로 낭비할 것이냐며 책망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제독 이두는 이전 사행에서 명나라 상인들의 바가지 요금에 당했던 조선 역관들과 이를 구원해 준 홍씨 성을 가진 명나라 제독의 일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연행록의 끝에는 명나라 조정의 조처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는 선조의 자문(咨文)과 권협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이 붙어있다. 본래 1권 1책(48장)의 필사본(筆寫本)으로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