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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19세기 사행록

연대재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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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록 정보에 대한 내용
사행록 정보 테이블
제목 연대재유록(燕臺再遊錄) 지은이 유득공(柳得恭)
사행당시직급 자제군관(子弟軍官) 기록연대 순조1
기록언어 한문

조선 후기 학자 영재(冷齋) 유득공(柳得恭)이 순조 1년(1801) 주자서(朱子書)의 좋은 판본을 구해 오라는 명을 받고 사은사 일행에 합류하여 중국에 체류하며 적은 사행 기록이다. 처음에는 『연대록(燕臺錄)』이라 이름 붙었다가 끝에는 『연대재유록(燕臺再遊錄)』이라 하였는데, 처음 연경에 가서의 기록인 『난양록』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연대재유록』은 일기ㆍ견문 등을 위주로 한 일반 사행록과는 달리 수많은 중국학자들과 사회ㆍ사상 등에 관한 문답을 기록한 것이 특징으로, 중세 동아시아 교류사의 진면목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1801년(순조 원년)은 바로 신유사옥(辛酉邪獄)이 일어나던 해이다. 전해인 정조 24년 6월 28일 정조가 승하하자 7월 24일 순조(純祖)가 11세란 어린 나이로 즉위하고 김대비(金大妃)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게 된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청나라에 왕의 승하(昇遐)를 알리고, 시호(諡號)를 청함과 동시에 새 왕의 승습(承襲)을 청하는 사신[告訃兼請諡請承襲使]으로 정사(正使) 능성위(綾城尉) 구민화(具敏和), 부사 예조 판서 정대용(鄭大容)을 청에 보냈다. 한편 청에서는 이 사신 일행과 함께 조의(吊儀) 및 책봉사(冊封使)를 딸려 보내 11월 24일에 서울에 도착했다.
거기에 대한 사례로 이듬해인 순조 원년 2월 12일에 정사 판중추(判中樞) 조상진(趙尙鎭) 등을 사은사(謝恩使)로 삼아 청에 보냈다.
당시 저자 유득공은 풍천 부사(豐川府使)로 있다가 1월 22일 파직하고 돌아와 있었는데 내각(內閣)으로부터 함께 연경에 가서 주자서(朱子書)의 좋은 판본을 구해 오라는 명을 받았다. 그래서 정사 일행보다 3일 늦게 서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