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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시놉시스

마술놀이를 구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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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에 대한 내용

마술을 구경하는데 고리연결, 검을 목구멍에 꽂고 다시 빼기, 찢어진 종이에 불을 붙여 씹어 삼키기, 톱밥을 삼킨 뒤 토해내기, 저글링, 종이를 계속 입에서 뽑아내기 등 위험하고 진기한 마술을 보았다. 또 한 만주인이 큰 호랑이 하나를 길러 목을 매어 가지고 와 재주를 보여주었다. 주인이 나무 막대기로 땅을 치며 주문을 외우자 호랑이는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엎드려서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누워서 발로 재롱을 떨기도 하고, 일어서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앞발로 주인이 들고 있는 나무 막대기를 움켜지기도 했다. 그 주인이 모자를 벗고 맨머리로 호랑이 입 안에 대거나 팔뚝을 그 입 안에 넣으면 호랑이는 혀를 내밀어 핥는다. 또 손으로 호랑이의 머리를 들고 입을 맞추었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공간
십리하

십리하(十里河)는 요양(遼陽)시와 선양(沈陽)시 중간에 있는 역으로 현재는 선양시에 속해 있다. 십리하(十里河)는 근원이 묘아령에서 나와 양가만에 이르러 사하(沙河)에 들어와 합류하고, 운하(運河)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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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

산해관

산해관(山海關)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관문이다. 1381년 명나라를 세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대장군 서달(徐達)이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명령을 받아 세운 대규모 방어시설이다. 관의 북쪽에는 연산산맥의 줄기인 각산(角山)있고, 남쪽에는 발해(渤海)가 있다. 산해관의 이름은 각산과 발해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산해관은 하나의 관문이 아니라 둘레가 5km인 성곽 전체를 말한다. 특히 동문은 이중으로 문을 만들고, 그 밖에는 나성을 둘러 방어의 기능을 높였다. 외문 바깥쪽에 ‘山海關(산해관)’이란 편액을 달았고, 내문 바깥쪽에는 ‘天下第一關(천하제일관)’이란 편액이 붙어있다. 이 산해관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중화와 오랑캐를 가르는 상징적 기준이었다. 산해관의 안쪽을 관내(關內)라고 하였고, 밖은 관외(關外)라 했으며, 청나라 북경에 들어설 때에도 입관(入關)이라고 하였다.
산해관은 천하제일의 관문답게 통관 절차가 까다로웠다. 사신 일행은 산해관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역관을 먼저 보내 사신이 도착했음을 알렸고, 관문 앞에 이르러 사람과 말의 수를 적은 단자를 들여보냈다. 관문이 열리면 관의 책임자의 점검을 받으며, 세 사신을 선두로 하여 문반과 무반이 대오를 이루어 차례로 들어섰다. 관내로 들어선 사신들은 발해 가에 쌓은 방어기지 영해성(寧海城)에 올라 발해를 구경했다. 영해성은 발해로 20m 들어가서 끝이 나는데, 여기를 노룡두(老龍頭)라 부른다. 만리장성을 한 마리 용에 비유하여, 그 머리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인물 이갑(李岬)

1737(영조13)~ 1795(정조19)
신기한 구경하기를 좋아하지만, 겁이 많아 눈을 똑바로 뜨고 보지 못하는 체질이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려도 손가락 사이로 볼 건 다보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털털하고 담백한 성격으로 누구나에게 잘 웃고, 소탈하게 대하는 성격으로, 기분 나쁜 감정을 속에 담아두지 않고, 꼬장꼬장하게 굴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본 것을 깔끔하게 요약 정리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객관적인 서술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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