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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시놉시스

사행의 임무를 완수하고 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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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에 대한 내용

사행의 임무를 완수한 내용을 임금께 아뢰었다. 황제의 건강과 정령에 대해 말씀 드렸다. 주상께서 황제와 사신단이 이야기할 때 누가 통역했는지를 물었을 때 통관이 통역을 하였다고 대답하였다. 황제가 사신단을 재차 불러 긴 말을 하고자 하며 만주어나 몽고어를 할 줄 아는 자가 있는지를 묻자 데려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더니 황제가 매우 답답해 했음을 임금께 아뢰었다. 역관들이 만주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여 데리고 오지 않았다고 대답한 것이었다고 아뢰었다. 임금께서는 역원에 책임이 있으므로 이 사안을 조목별로 제시하면 특별히 해당 관청인 역원에 주의를 주겠다고 하셨다.

공간
고려보

고려보(高麗堡)는 풍윤을 지나 옥전현 못 미쳐 있는 마을이다. 병자호란 때에 포로로 잡혀간 조선인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고려보란 이름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거의 100여 호가 모여 살았는데, 조선의 사행들이 이곳을 지나며 주민들에게 조상과 집안을 캐묻는 일이 많아졌고, 주민들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기를 피하였다. 주민들은 오랑캐에게 잡혀온 것이 부끄럽고,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만 같아 사행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그 숫자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고려보 부근에는 상당한 넓이의 논이 있어 벼농사를 지었다. 시장에 밤절편[栗切餅], 송편[松餅] 따위가 있어 사람들이 고려떡이라고 부르는데, 이것 역시 떡장수들이 조선의 떡을 본 따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향 생각이 절실하던 사행은 떡을 많이 사 먹으므로, 주민들이 떡함지를 들고 나와 팔기도 하고 그냥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후대에 오면서 공짜를 바라는 사행의 하인들과 조선에 대한 향수가 점점 사라지는 주민들 사이에 다툼이 생겨 서로 원수가 되었다고 한다.

자금성 경운문

태화전 동각과 서각에 좌익문(左翼門)ㆍ우익문(右翼門)이 있다. 좌익문 밖에 문연각(文淵閣)이 있고 우익문 밖에는 무연각(武淵閣)이 있다. 문연각의 오른쪽을 따라 높은 담이 둘러 있고, 담의 동쪽 모퉁이에 문 하나가 있으며, 여기를 지나면 경운문(景運門)이다.

인물 서호수(徐浩修)

1736(영조12)~ 1799(정조23)
딱딱하고, 반듯한 성격으로 융통성이 적어 곧이곧대로 해야 성미가 풀리는 성격이다. 감상에 치우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뭐든지 이성적으로 처리하고자 한다. 일을 똑 부러지게 처리해야 속이 시원해지고, 남이 제대로 못하는 것을 못 보는 성격으로 철두철미하고 일에 있어서는 완벽을 기하고자 한다.

소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