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시놉시스

연극을 구경하다
위로 이동 |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시놉시스에 대한 내용

거리에 대나무를 얽어 만든 건물이 있었는데, 바로 연극을 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남자들이 담을 치듯 빙 둘러 모여 있었다. 연극을 하는 장소에 마주한 곳에 인가가 있었다. 그 집 문 안에는 캉이 하나 있었는데, 창문 안에는 많은 여자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캉에 앉으려 했으나 여인들이 자리를 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잠시 숙소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연극을 보는데, 어떤 사람이 연극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무대에 등장했던 사람들은 막이 바뀔 때마다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리가 아주 맑고 아름다워서 듣기 좋았지만, 노래 가사의 의미는 알 수 없어서 별 맛이 없었다.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모두 짧은 구절로 이루어진 말이거나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도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다. 관람자들은 모두 돈을 내고 보는데,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연극 공연은 모두 역사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서, 내용은 도덕적인 선이나 악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연극을 보면 권선징악을 가르칠 수 있었다. 게다가 옛날의 관복 제도나 중국의 풍속에는 살펴볼 만한 것이 많다. 지금 한족의 후예가 중화의 제도를 자랑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 연극 덕분이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보면 배우도 없어서는 안 될 직업이다.

공간

이미지 상세팝업 보기

산해관

산해관

산해관(山海關)은 만리장성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관문이다. 1381년 명나라를 세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대장군 서달(徐達)이 태조 주원장(朱元璋)의 명령을 받아 세운 대규모 방어시설이다. 관의 북쪽에는 연산산맥의 줄기인 각산(角山)있고, 남쪽에는 발해(渤海)가 있다. 산해관의 이름은 각산과 발해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산해관은 하나의 관문이 아니라 둘레가 5km인 성곽 전체를 말한다. 특히 동문은 이중으로 문을 만들고, 그 밖에는 나성을 둘러 방어의 기능을 높였다. 외문 바깥쪽에 ‘山海關(산해관)’이란 편액을 달았고, 내문 바깥쪽에는 ‘天下第一關(천하제일관)’이란 편액이 붙어있다. 이 산해관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중화와 오랑캐를 가르는 상징적 기준이었다. 산해관의 안쪽을 관내(關內)라고 하였고, 밖은 관외(關外)라 했으며, 청나라 북경에 들어설 때에도 입관(入關)이라고 하였다.
산해관은 천하제일의 관문답게 통관 절차가 까다로웠다. 사신 일행은 산해관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역관을 먼저 보내 사신이 도착했음을 알렸고, 관문 앞에 이르러 사람과 말의 수를 적은 단자를 들여보냈다. 관문이 열리면 관의 책임자의 점검을 받으며, 세 사신을 선두로 하여 문반과 무반이 대오를 이루어 차례로 들어섰다. 관내로 들어선 사신들은 발해 가에 쌓은 방어기지 영해성(寧海城)에 올라 발해를 구경했다. 영해성은 발해로 20m 들어가서 끝이 나는데, 여기를 노룡두(老龍頭)라 부른다. 만리장성을 한 마리 용에 비유하여, 그 머리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인물 김창업(金昌業)

1658(효종9)~ 1721(경종1)
행동력 있고, 직선적인 성격으로 표현 역시 직접적으로 간명하게 하는 편이다. 비교적 수식을 많이 하지 않고 담백하게 글을 쓰고, 사고 역시 그러하다. 한 가지를 보더라도 감정적 서술보다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부분에 대하여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한다. 해서 말도 그리 많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도 돌려서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지적하고 넘어가는 편이다.

소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