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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시놉시스

고려보의 나쁜 인심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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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에 대한 내용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잡혀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고려보라는 마을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도 몹시 궁색해 보였다. 이들은 논농사를 짓고, 떡과 엿을 먹는 등 아직도 고국의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옛날에 사행단이 이곳을 지나가면, 고국에서 온 사행단을 반가워하여 하인들이 사 먹는 밥과 술을 공짜로 주기도 하는 등 환대하였다. 그런데 하인들이 이런 환대를 이용하여 술과 밥을 마음대로 요구하고, 심지어 주인이 고국의 정을 각별히 생각하지 않으면 물건을 훔치기도 하였다. 그래서 결국 고려보의 사람들은 조선인을 멀리하게 되고 밥과 술도 간절히 부탁을 해야 팔곤 하였다. 그러면 사행단의 하인들은 이를 꽤심히 여겨 여러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골탕먹이고는 하여 마침내는 서로 상극이 되었다. 사행단이 고려보를 지나치면서 한 목소리를 내어 욕을 하면, 그들도 똑같이 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고려보의 풍습이 못됐다고 욕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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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성

봉황성

봉황성(鳳凰城)은 봉황산(鳳凰山) 서쪽에 있는 성으로 지금의 봉성시(鳳城市)이다. 조선 쪽의 국경을 책임지는 도시로, 봉황성장이 주관하였다. 명나라의 지리서 『일통지(一統志)』에 따르면 발해 때에는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요나라 때에는 개주진국군(開州鎭國軍)이 설치되었고, 원나라 때에는 동녕로(東寧路)에 소속되었다. 명나라 때에 벽돌로 튼튼하게 성을 쌓았고, 청나라에 이르러서는 조선과의 국경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현지인들은 조선을 숭상하여 사행에 따라온 의주 사람을 이웃 친지처럼 대하였다. 박지원이 여기에 이르러 처음으로 벽돌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인물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13)~ 1805(순조5)
호기심이 많고,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학문이 풍부해 중국의 경제, 사회, 문학, 정치 등에 다양한 의견을 표함. 짓궂은 구석이 있다. 한문을 다루는데 능통하고,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다. 은근슬쩍 잘난 체를 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다소 진지하지만 유머러스하게 말을 잘해 사람들을 웃게 한다. 소설 짓기, 말 타고 잠자기가 취미이고 화술과 재치가 뛰어나 많은 친구들과 교유를 한다. 사행을 다녀와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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