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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시놉시스

공금 도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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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에 대한 내용

고교보에서 묵었는데 갑군이 밤이 새도록 순찰을 돌며 우리나라 사람들을 도적과 다름없이 감시하고 방비했다. 숙소로 정한 집의 청지기 말로는 이곳 사람들은 조선 사람을 원수같이 생각해 가는 곳마다 문을 닫고 맞이하지 않으면서 조선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세진 숙소의 주인을 죽였다며 일행 중에 도적질 잘 하고 도망 잘 치는 자가 없다고 장담하겠느냐고 한다. 이 사정을 역관에게 물으니 4년전 고교보에서 사신 일행이 공금 인은 천냥을 잃어버렸다. 이 돈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고, 물어내자고 해도 감당이 안되니 지방관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금새 황제에게까지 알려져 황제의 분부로 잃어버린 돈을 찾았다. 하지만 이 지방은 관은으로 잃어버린 돈을 변상하고 지방관이 도적 막기에 힘쓰지 않아 길손에게 원통한 변을 당하게 했다는 이유로 파직을 시켰다. 또한 숙박집 주인과 그 가까운 이웃에 사는 용의자들을 잡아다 심문하면서 하도 심하게 닥달을 해서 그 중 4~5명이 죽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고교보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을 원수같이 보니 갑군이 저러는 것도 괴이한 일이 아니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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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주

계주

계주(薊州)는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때의 어양군(漁陽郡)으로,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킨 곳으로 유명하다. 성 안에 있는 독락사(獨樂寺)는 당(唐)나라 때 건축했으나 요(遼)나라 때 중건해서 현재 요나라 3대 사원의 하나로 꼽는 절이다. 관음각 안의 아홉 길의 금불과 와불(臥佛)로도 유명하다. 또한 성 안에 있는 어양교(漁陽橋)의 좌우로 양귀비(楊貴妃)와 안록산의 사당이 마주하고 있었다. 조선 사행들은 대개 당나라를 그르친 두 인물을 위한 사당을 짓고 명복을 비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인물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13)~ 1805(순조5)
호기심이 많고,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학문이 풍부해 중국의 경제, 사회, 문학, 정치 등에 다양한 의견을 표함. 짓궂은 구석이 있다. 한문을 다루는데 능통하고,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다. 은근슬쩍 잘난 체를 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다소 진지하지만 유머러스하게 말을 잘해 사람들을 웃게 한다. 소설 짓기, 말 타고 잠자기가 취미이고 화술과 재치가 뛰어나 많은 친구들과 교유를 한다. 사행을 다녀와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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