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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시놉시스

참외를 파는 노인에게 속아 넘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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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에 대한 내용

날이 저물어 서둘러 말을 달려 참으로 가는 도중에, 참외밭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말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조금 전에 조선인 40~50명이 지나가다 참외를 처음에는 돈을 주고 사먹더니, 나중에 돈을 지불하지 않고 1개씩 가져가 항의를 하였으나 도저히 당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면서 청심환을 달라고 졸라 청심환이 없다고 하니, 참외를 팔아달라고 졸라 마침 목도 마르고 하여 참외 1개를 먹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창대와 장복에게도 2개씩 먹게하고, 4개는 사가지고 가는데, 참외 9개의 값으로 노인은 80푼을 요구하여, 처음에 50푼을 주니, 화를 내며 받지않아, 주머니를 다 털어 보여주면서 71푼을 주니 그제서야 받았다. 가련하게 보여 비싼 값에 억지로 참외를 판 노인도 통탄스런 일이지만, 우리나라 하인이 길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더욱 한심하다. 참에 도착하여 참외를 주면 그런 얘기를 하니, 마두들이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면서 청심환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하니 속은 것이 분해 눈물이 다 났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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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원보

통원보

통원보(通遠堡)는 명나라 때 진이보(鎭夷堡)라고 불렸던 곳이다. 후금(後金)이 청(淸)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황제로 즉위하던 해에 춘신사(春信使)로 갔던 나덕헌이 돌아오면서 국서(國書)를 버려두고 온 곳으로 유명했다. 엄연히 명나라와 사대의 관계에 있던 상황에서 ‘청나라 황제’를 용납할 수 없었기에 나덕헌은 조선으로 국서를 가져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일은 병자호란의 한 원인이 되었다. 한편 박지원은 장마로 길이 막혀 통원보에서 여러 날 묵었다. 그는 벽돌 가마에서 관찰하면서 벽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고, 온돌보다 난방이 뛰어난 캉[亢]을 칭찬하기도 하였다.

십강자

십강자(十扛子)는 이도정(二道井)과 소흑산(小黑山) 사이에 있다. 박지원은 십강자에 이르러 요란한 음악소리에 의해 상가의 제도를 보게 되는데, 구경 좀 하려다가 조문객으로 오해를 받고 끌려들어간다.

인물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13)~ 1805(순조5)
호기심이 많고,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학문이 풍부해 중국의 경제, 사회, 문학, 정치 등에 다양한 의견을 표함. 짓궂은 구석이 있다. 한문을 다루는데 능통하고,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많다. 은근슬쩍 잘난 체를 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다소 진지하지만 유머러스하게 말을 잘해 사람들을 웃게 한다. 소설 짓기, 말 타고 잠자기가 취미이고 화술과 재치가 뛰어나 많은 친구들과 교유를 한다. 사행을 다녀와 열하일기(熱河日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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