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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행록 종류

사행록 종류

중국 원(元)나라로부터 명(明)나라를 거쳐 청(淸)나라까지 조선 외교사절단의 공식 및 비공식 기록인 사행록(使行錄)은 시대별로 부르는 이름에 차이가 있었다.

먼저 원나라 때 중국을 다녀온 사행 기록에는 빈왕록(賓王錄)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명나라 때 중국을 다녀온 사행 기록에는 ‘천자에게 조회하러 간다’는 의미의 조천(朝天)이라는 말을 넣어 조천록(朝天錄)이라 이름 붙인 경우가 많았다. 이후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선 후에는 조천이라는 말이 오랑캐를 떠받드는 의미가 되어 소중화(小中華)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냥 청의 수도였던 베이징의 옛 이름인 연경(燕京)을 넣어 그 사행 기록을 연행록(燕行錄)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 따른 사행록 종류의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는 임진왜란 때 권율의 휘하에서 공을 세우고 후에 진주사(陳奏使)의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를 다녀와 사행 기록을 남긴 황여일의 사행록에 『조천록』이라 제목을 붙인 것처럼 명나라 때 중국을 다녀온 사행록에 연행록이라고 이름 붙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대에 따른 구별보다는 빈왕록, 조천록, 연행록을 통칭하여 사행록으로 명명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사행록은 주로 한문으로 적었고, 한글로 적은 것도 있었는데, 같은 저자가 하나의 사행록을 한문과 한글로 적은 경우도 있었다. 홍대용의 『담헌연기(湛軒燕記)』는 한문본으로 주제별로 편집되었고, 한글본인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은 우아한 궁서체로 날짜를 따라 써내려간 문학적 일기이다. 숭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