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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중국과 중국문화

중국 식생활

연행록에는 총 150여 종의 음식 재료가 등장한다. 이는 당시 한ㆍ중의 식생활을 비교하는 긴요한 자료가 된다. 미곡(米穀)에 대한 표현은 17가지로 그 가공법 및 용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국은 미곡보다는 잡곡류가 많았고, 특히 조와 수수가 주요 곡물이었으며, 콩은 품질이 우리 것만 못해서 주로 말의 먹이로 사용하였다. 땅콩은 당시 우리나라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식생활에 관해서는 김경선의 『연원직지(燕轅直指)』와 홍대용의 『연기(燕記)』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다.

조석 식사 차림

중국인들은 조석 식사로 밥 또는 죽을 먹는데, 밥그릇은 찻잔만하다. 대개 4~5명 혹은 6~7명이 같이 한 탁자에 둘러앉아 먹는다. 먼저 나물과 장(醬) 같은 것을 놓고 사람마다 밥그릇과 찻잔을 하나씩 마련해 놓은 뒤에 사발을 가져다 밥을 담아 주고, 다음에 끓인 국과 구은 고기를 내 온다.

밥쌀

밥쌀은 다 산도노미(山稻老米)로서, 기름기가 없고 거칠다. 홍대용은 『연기』에서 “노미(老米)란 것은 곧 노미(澇米)인데 물에서 건져낸 쌀을 말한다”고 하고서는, 대개 창고에다 쌀을 쌓아두는 사람들은 반드시 물에 넣었다가 건져내어 말린 다음에 이것을 저장하는데, 이렇게 하면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관동(關東)에는 밥쌀이 소미(小米: 좁쌀)와 촉서(蜀黍: 수수)여서, 사절(使節)들은 평안도에서부터 우리 쌀을 준비해 갔다고 한다.

젓가락만을 사용하는 중국인

음식은 모두 젓가락으로 먹는다. 숟가락은 사기로 만들고 자루가 짧으며 구기는 깊어 국을 떠먹을 때 쓴다. 손님 대접을 할 때는 모두 식탁에 둘러앉는데, 각 사람 앞에 젓가락 1쌍과 술잔 1개, 찻종[茶鍾] 1개씩을 놓아둔다. 모시는 이[侍者]가 차를 따르고 다음에 술을 따르는데, 술은 마시는 대로 따라 놓는다. 그리하여 열 몇 잔이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더 마시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 잔을 엎어 놓으면 더 따르지 않는다.

차 대접 문화

차를 끓이는 주전자와 뚜껑이 있는 찻잔

손님 대접을 할 때 비록 반찬은 없더라도 반드시 차(茶)는 내 온다. 차 마시는 법은 찻잎을 조금 잔에다 넣고 구리주전자의 끓는 물을 부은 다음 뚜껑을 덮어 둔다. 찻잎이 붇고, 끓인 물이 황납색(黃蠟色)으로 말갛게 변하여 맑은 향기가 풍겨 나오면 따라 마신다. 차는 대화중에 끊임없이 마시는데 한 식경(食頃: 식사를 마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그 잔을 다 마신다. 그러면 다시 끓는 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둔다.

차는 품종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청차(靑茶)를 가장 하품으로 친다. 보이차(普洱茶)를 시중에서는 가장 귀한 것으로 여지기만 가짜가 많다고 하며, 절강국차(浙江菊茶)도 향기가 맑다. 동팔참(東八站)처럼 차가 귀한 곳에서는 쌀을 볶아서 대용하기도 하는데 이를 노미차(老米茶)라고 한다.

술 문화

술에는 홍소주(紅燒酒)ㆍ청주(淸酒)ㆍ황주(黃酒)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황주라는 것은 탁주다. 술잔은 아주 작아서 겨우 몇 숟갈이 들 정도이며 술을 데우는 납기(鑞器:백철그릇) 역시 겨우 한 잔이 들어 갈 정도였다. 이것은 둥글고 허리가 가는데 그 허리 있는 데서 막혀 그 위쪽에 술을 붓고 아래로 화기를 통하면 금방 데워진다. 잔에다 부어 들고 조금씩 마시는데 대개 7~8번을 마셔야 한 잔을 다 마시게 된다. 따라서 종일 마셔도 심하게 취하는 일이 없다. 옛 사람들이 하루에 3백 잔을 마셨다는 것도 이에서 연유한 것이다.

떡 문화

떡은 이른바 유박아(柔薄兒)라는 것이 제일 좋다고 일컬어진다. 밀가루로 눌러 만든 것이 마치 우리나라 상화떡처럼 생겼으며, 합친 부분에 주름이 지게 해서 꼭 우리나라 만두처럼 생겼다.

분탕(粉湯)은 밀가루 재료에다 돼지고기로 소를 만든 것이고, 혼돈탕(餛飩湯)은 실낱 국수에다 파, 마늘, 돼지고기를 섞은 것이며, 원소병(元宵餠)은 백설기 가루로 경단을 만들어 설탕 가루를 묻힌 것이다. 자산(赭饊)은 설탕 가루에 수박씨로 소를 만든 것인데, 빛깔이 누런 것을 황강자(黃糠子), 희고 둥근 것을 지병(枳餠), 참깨[芝麻]로 무친 것은 태색병(苔色餠)이라 한다. 이른바 절고(切糕)란 황률(黃栗)로 떡을 만들어 잘라서 먹는 것인데, 설탕만 넣은 것을 당불(餹餑), 돼지고기로 소를 넣은 것을 탕불(湯餑)이라 한다. 가루로 만든 떡이나 기름에 튀긴 것을 모두 과자(菓子)라고 부르는데, 녹용고(鹿茸糕), 인삼고(人蔘糕), 계압고(鷄鴨糕) 등은 모두 진기하고 맛있는 것이어서 먹을 만한데 산해관 밖 연로(沿路)에 많다.

박사호는 『계산기정(薊山紀程)』에서 중국의 소고기는 우리 것만 못할 뿐 아니라, 먹는 고기는 돼지고기를 제일로 치고, 양ㆍ노새ㆍ닭ㆍ오리 등이 그 다음이라고 하였다. 남녀를 물론하고 살결이 희고 뚱뚱한 사람이 많은데 이는 평소 육식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생선에는 뱅어ㆍ쏘가리ㆍ숭어ㆍ메기ㆍ잉어ㆍ붕어 그리고 모시조개ㆍ긴맛 등이 있는데 모두 우리나라의 것과 같다.

담배문화

담배는 남녀노소 안 피우는 사람이 없다. 잘게 썰어 말린 담뱃잎은 습기가 없어 한 순간에 다 타 버리고 만다. 담배는 남방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이름을 남초(南草)라고도 하는데, 인조(仁祖) 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벌꿀은 대단히 귀하기 때문에, 단맛을 내는 데는 모두 설탕 종류를 쓴다. 설탕은 사탕수수를 고아서 만든다.

채소와 과실

채소와 과실 종류는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과 비슷한데, 채소는 흔히 날것으로 먹거나 혹은 설탕을 쳐서 단맛을 곁들여 먹는다. 갓김치와 배추김치는 도처에 있으나 너무 짜고, 장과(醬瓜: 장아찌)라는 것이 있는데 맛이 좋지 않다. 마늘ㆍ파ㆍ배추ㆍ무ㆍ시금치ㆍ당근ㆍ동과ㆍ호박ㆍ수박ㆍ참외 등은 어디에서든지 쉽게 볼 수 있다. 수박은 모양이 길고 속은 노랗고, 씨는 까만 반점이 많은데, 그 씨를 볶아서 먹는다. 당근은 빛깔이 홍당무처럼 빨갛고, 미나리는 약간 매우며, 배추는 우리나라 것보다 크기가 배는 되며, 살이 무척 연하다. 산약(山藥: 참마)도 많이 있으나, 모두 채마밭에 심은 것이어서 그리 좋지 않다.

김창업의 『연행일기』에 나타난 여지

여지

포도ㆍ능금ㆍ빈과(蘋果)ㆍ배ㆍ대추 등 과실들이 2월 말까지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데도 매우 신선하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남방(南方)에서 나는 과실로 송황(松皇)ㆍ등종(藤悰)ㆍ용안(龍眼)ㆍ여지(荔枝)ㆍ빈랑(檳榔) 등이 있다. 여지는 남방에서 황제에게 진상하려고 들여온 것이다. 김창업은 그의 『연행일기(燕行日記)』에서 “그것을 보니 껍질은 반쯤 말랐으나 아직도 붉은 색이 있고, 안은 희기가 옥과 같은 것이 씨를 몇 겹이나 둘러싸고 있다. 껍질과 살 사이에 물이 가득 찼는데, 그 단맛은 꿀과 같았다.”고 한 바 있다. 7월에 익으며, 껍질의 향내가 좋은데 이는 그 단물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