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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사행 재조명

사행 재조명

대중사행(對中使行)은 근대 이전, 외부에서 들어오는 길을 굳게 닫고 있던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이웃의 명ㆍ청과 집중적으로 교류하던 방식이다.

조선의 대중 사행은 자주성이나 주체성과 대립되는 사대주의로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행은 국제 정세를 통찰한 결과,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된 정책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명나라 때에는 책봉 정책으로 청나라 때는 조공 정책으로 중국을 드나들면서 조선의 국가안보를 보장받음과 동시에 무역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획득하고, 우리가 가진 인삼ㆍ종이ㆍ청심환 등을 공무역, 사무역등을 통해 팔아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일본으로는 중국의 물자를 팔고, 일본의 은을 들여오는 중개 무역을 통해서 한층 많은 경제적 성장을 기할 수 있었다.

또한 중국에서 서책과 선진 문물을 도입하였고, 중국 선비들과의 교유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조선 선비들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닌 넓은 세계관을 가진 실증적 사고를 갖출 수 있도록 변해갔고,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자아 성찰의 계기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사행’이었다.

따라서 사행이라는 행위를 단순한 사대 외교로서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문화 교류와 실리 외교의 주체성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껏 사행 및 사행록에 대한 연구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나 홍대용의 『담헌연기(湛軒燕記)』 등 18세기의 걸출한 작품으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사행 기록을 통사적으로 정밀하게 읽다 보면,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변치 않는 일관된 흐름을 잡을 수 있고, 그 흐름 속에 쉬지 않고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들을 포착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읽기위해 학제적 연구를 통한 입체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이제까지는 사행록을 중심으로 한 문학 연구가 주축을 이루었다. 하지만 사행은 근본적으로 정치ㆍ외교적 행위이며 동시에 경제 교역과 문화 교류 등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정치ㆍ경제ㆍ문화예술ㆍ군사ㆍ지리ㆍ인류학 등의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아울러 사행 노정의 현장은 지금도 중국 땅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답사를 비롯한 현장론적 연구도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다방면의 연구를 통해 사행을 재평가하고, 연행 노정 현장에 서서 과거 조선의 지식인들이 했던 고민을 떠올려 봄으로써, 앞으로의 대중관계를 헤아려 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