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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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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겁결에 초상집에 조문하다
줄거리

길가 옆 마을에 흰 패루를 세운 집이 있는데 초상난 집이다. 이 패루는 갈대로 지었는데, 패루 밑에 악사들이 연주하고 있었다. 거리를 동료 2명과 거닐다가 막 새로 짠 패루를 가까이서 구경하기 위해 다가갔더니 악사들이 요란스럽게 음악을 연주하여 동료 2명은 도망쳤다. 나는 초상집을 좀 더 구경하기 위해 대문 앞으로 다가가니 상주 1명이 뛰어나와 갑자기 변을 당했다며, 울부짖는데, 그 뒤로 흰 두건쓴 5~6명이 따라나와 나를 부축하여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건량마두 이동이 안에서 나오길래 물으니, 평소에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 조문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 하였다. 당 앞에 갈대자리로 만든 큰 집을 세우고는 그 안에 내외의 복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동이 상주가 술과 음식을 대접할텐데 먹지않고 돌아가면 큰 실례라고 하면서, 갈대자리로 만든 집이 빈소라고 알려주었다. 이윽고 상주가 나와 상에 국수, 과일, 술 등 음식을 벌여놓고 잔 3개를 가져와 이동에게도 앉기를 권하니 이동이 상전 앞이라 마주 앉기를 사양하면서, 밖에 나가 백지 한권과 돈 일초를 가지고 와서 상주에게 내가 부의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상주가 공손히 사례를 하여 나는 대충 음복하는 시늉만 하고 밖으로 나오니 상주가 배웅을 하였다. 이윽고 사행단이 도착하여 조상한 이야가를 하니 모두들 배를 잡고 웃었다.

번역문

아골관(鴉鶻關)에서부터 길가 옆에 있는 마을 안에는 흰 패루(牌樓)를 높이 세운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초상난 집이라고 한다. 갈대로 짠 자리로 지었는데, 기왓골이나 치문(鴟吻)의 모양은 나무나 돌로 만든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높이는 4〜5길이 되고 초상집 문에서 열 걸음쯤 떨어져 세웠는데, 그 밑에는 악사(樂士)들이 늘어앉아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바라 한 쌍, 피리 한 쌍, 태평소 한 쌍을 가진 악사들이 밤낮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가 조문객이 문에 이르면 더 요란하게 악기를 불고 두드려댔다. 그리고 영전에 제물을 바치거나 제사를 지내면서 안에서 곡소리를 내면, 이내 밖에서도 맞받아 불고 두드리며 서로 화답하는 듯 야단이다.
내가 십강자에 이르러 쉬는 사이에 정(鄭) 진사, 변(卞) 주부 두 사람과 함께 거리를 거닐다가 갈대로 짠 자리로 지은 어느 패루 앞에 이르렀다. 막 새로 세운 패루의 구조를 자세히 구경하려고 할 즈음, 갑자기 악사들이 요란스럽게 바라를 치고 피리를 불어댔다. 정 진사와 변 주부는 귀를 막고 도망쳤다. 나 역시 두 귀가 먹을 것 같아서 손을 흔들어 소리를 멈추라 했지만, 악사들은 막무가내로 듣지 않고, 단지 힐끔힐끔 돌아보고는 계속 악기를 불고 두드려댔다.
나는 초상집의 모양을 보고 싶어서 대문 앞까지 몇 발자국을 옮겼다. 이때 문 안에서 상주(喪主) 한 사람이 뛰어나오더니 내 앞에 와 울면서 대나무 지팡이를 내던지고 두 번 절하였다. 엎드릴 땐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고 일어설 땐 발을 구르며 눈물이 비 오듯 했다.
“갑자기 이런 변을 당했으니,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습니다!”
상주가 한없이 울부짖었다. 상주 뒤로 5〜6명이 따라 나왔는데 모두 흰 두건을 썼다. 그들은 나를 양쪽에서 부축하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상주 역시 곡을 멈추고 따라 들어왔다. 때마침 건량마두(乾糧馬頭) 이동(二同)이 안에서 나오길래, 나는 하도 반가워서 엉겁결에 물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그러자 이동이 대답했다.
“소인은 죽은 사람과 동갑이라서 원래부터 서로 친절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아까 들어와서 그 처를 조문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조문(弔問)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이동이 말해 주었다.
“상주의 손목을 잡으시고 ‘당신의 아버지께서 하늘로 돌아 가셨군요’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동이 다시 나를 따라 들어오면서 또 일러주었다.
“백지(白紙) 권이나 부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소인이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당(堂) 앞에 갈대 자리로 큰 집을 세웠는데 그 모양이 아주 이상했다. 뜰에는 흰 베로 휘장을 쳤고 그 휘장 안에는 내외(內外)복인(服人)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동이 말했다.
“상주가 술과 과일을 대접할 것입니다. 좀 기다리십시오. 너무 빨리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대접한 음식을 드시지 않으면 큰 실례가 됩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왕 여기까지 들어왔으니 구경은 하겠지만, 문상을 한다는 것은 좀 겸연쩍은 일이네.”
그러자 이동이 말했다.
“아까 벌써 조문은 하신 셈이니 다시 조문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내 이동은 갈대자리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빈소(殯所)입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자기 집을 비워둔 채 이 빈소로 옮겨 옵니다. 그리고 포장 속에 각기 신분에 맞게 복상 하다가 장사를 치른 뒤 각자 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휘장 속에서 한 여인이 가끔 머리를 내밀고 엿보았다. 흰 베로 머리를 싼 그녀의 모습에는 제법 자태가 흘렀다. 이동도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저 여인은 죽은 이의 딸입니다. 산해관에 살고 있는 부자 상인의 아내입니다.”
이윽고 상주가 빈소에서 나와 걸상에 앉았다. 흰 두건을 쓴 사람 2명이 국수 두 그릇, 과실 한 쟁반, 두부 한 소반, 채소 한 쟁반, 차 두 잔, 술 한 주전자를 탁자 위에 벌여 놓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빈 잔 3개를 놓고, 탁자 저편엔 빈 의자를 가져와서 이동에게 앉으라고 청했다. 그리고 그 앞에 오고, 빈 잔 3개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이동이 애써 사양하면서 말했다.
“저의 상전이 계신데 어찌 감히 마주 앉을 수 있으리까.”
이동은 곧 밖으로 나가더니 백지 한 권과 돈 일초(一鈔)를 갖고 들어와서 상주 앞에 놓고 내가 부의(賻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주가 걸상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사례했다. 나는 대충 음복하는 시늉만 하고 곧 일어나 나오니, 상주가 문 밖까지 나와서 전송했다. 문 앞 양쪽 행랑채에서는 대나무로 목마를 만들어서 종이를 입히고 있었다.
이윽고 사행단이 이곳에 도착해서 쉬었고, 부사도 잇따라 이르러 길가에 가마를 내렸다. 내가 아까 조상하던 이야기를 하니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