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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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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초를 밀수하다가 적발되다
줄거리

선래군관 이면의 노비가 염초를 수레 속에 몰래 실었다. 고용한 수레꾼은 통원보 사람인데 잘 대해주지 않아 봉황성 장군에게 이 사실을 고발해서 일이 터지게 되었다. 대책을 강구할 여지가 없어 요행을 바랄 뿐이었다. 책문에 도착한 일행은 모두 책문을 나가지 못하고 모여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봉황성 장군이 손에 작은 염초 덩어리 하나를 쥐고서 고발이 있어 금지된 물품을 적발했으니 일행의 짐을 모조리 수색하겠다고 했다. 수색을 당하자 금지된 물품이 쏟아져 나왔다. 품목을 일일이 기록하고 북경에 보고하려고 하였다. 사람마다 아연실색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이대로 둘 수 없어 일행에게 밥을 짓게 하고, 역관을 보내 강하게 항의했으나 저들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갈수록 횡포를 부렸다. 붙잡혀 있는 관용말몰이꾼 다섯 사람을 가마 앞으로 끌어다가 무겁게 곤장을 치고 저들과 다시 말하지 못하게 하자 광록경과 봉황성 장군이 오히려 불안해하면서 수색을 늦추고 일행을 나가게 하였다. 좋은 은장도를 예물로 주고 채찍을 휘둘러 책문을 나왔다. 이는 필시 의주에서 개시할 때 남아 있던 재앙이 억울하게도 우리 사행에 미친 것이다.

번역문

8리쯤 앞으로 나갔는데, 부사를 수행하는 당상역관(堂上譯官) 박이절(朴而嶻)이 달려와서 급히 보고하였다.
“선래군관(先來軍官) 이면(李㴐)의 노비가 염초(焰焇)를 수레 속에 몰래 실었습니다. 고용한 수레꾼은 통원보(通元堡) 사람인데, 잘 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봉황성 장군에게 이 사실을 고발해서 일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좋은 대책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일이 이미 벌어졌으니, 앞뒤로 취할 대책을 강구할 여지가 없었다. 오직 요행을 바랄 뿐이었다. 또 5리를 가서 책문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모두 책문을 나가지 못하고 한데 모여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탄 가마를 책문 앞에 내려놓았다. 봉황성 장군이 손에 작은 염초 덩어리 하나를 쥐고서 말하였다.
“이제 고발이 있어서 반출이 금지된 물품[禁物]을 이미 적발했습니다. 일행의 짐을 모조리 수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큰 일이었다. 일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고 보니, 무슨 좋은 계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좋은 말로 설득하고 있을 즈음에 먼저 온 일행이 모두 샅샅이 수색을 당했다. 그야말로 칼날을 직접 마주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출이 금지된 물품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품목을 일일이 기록하고 북경에 보고하려고 하였다. 사람마다 실색하지 않는 자가 없었고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랐다.
내가 생각건대 이는 최근에 없었던 일이므로 그들이 하는 대로 버려둘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일행을 뒤로 물리치고 말안장을 내리고 밥을 짓게 하여 그 자취를 감추게 하였고 또 한편으로 역관을 보내서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저들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고 갈수록 횡포를 부려 참으로 분하였다. 붙잡혀 있는 관용말몰이꾼[刷馬夫] 다섯 사람을 내 가마 앞으로 끌어다가 갑자기 무겁게 곤장을 치고, 저들과 다시 말하지 못하게 했다. 광록경(光祿卿)과 봉황성 장군은 내가 이렇게 불평하는 기색을 보이자 오히려 불안해하면서 수색을 늦추고 일행을 나가게 하는 한편 부드러운 낯빛으로 와서 위로하였다.
“이 물건들이 비록 법에 걸리기는 하지만, 가죽은 무두질해서 만든 것이고 금과 은은 녹여서 가공한 것입니다. 대개 중요하기는 하나 그 죄가 무겁지는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다시 광록경과 작별하면서 아주 좋은 은장도(銀粧刀)를 예물로 주었다. 채찍을 휘둘러 책문을 나왔다. 이는 필시 의주에서 개시할 때[灣市] 남아 있던 재앙이 억울하게도 우리 사행(使行)에 미친 것이다. 갑에게 화난 것을 을에게 분풀이하는 그 소행이 더욱 화난다. 임무로 인해 임시로 파견된 관리[差員]인 희천(煕川) 수령에게 다섯 명 죄인을 시켜 압송해 가게 했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대룡산(大龍山)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대동(大同)의 우졸(郵卒)이 말 두 필을 끌고 와서 만났다. 오늘 아침에 벌어졌던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털이 위로 뻗친다. 이것은 실로 요동을 다닌 지 20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치욕이었다. 붙잡힌 다섯 놈은 죽여도 아까울 것이 없다.
아침 수색에서 부사 김남중(金南重)의 종이 붙잡힌 것을 내가 주선해서 간신히 무사하게 만들었다. 김남중이 찾아와서 간곡하게 감사하다고 했다. 서장관 정인경(鄭麟卿)이 뒤를 이어 와서 일을 상의했다. 상통사(上通事) 최진남(崔振南)에게 일행 속에 반출이 금지된 물품을 감추어 오는 자를 적발하여 고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곤장 10대를 쳤다. 비록 체례(體例)에 의해서 벌이 행하여진 것이지만, 어찌 다만 그의 허물이겠는가. 10여 년 동안 법을 범한 것이 이제야 비로소 발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