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잡혀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고려보라는 마을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도 몹시 궁색해 보였다. 이들은 논농사를 짓고, 떡과 엿을 먹는 등 아직도 고국의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옛날에 사행단이 이곳을 지나가면, 고국에서 온 사행단을 반가워하여 하인들이 사 먹는 밥과 술을 공짜로 주기도 하는 등 환대하였다. 그런데 하인들이 이런 환대를 이용하여 술과 밥을 마음대로 요구하고, 심지어 주인이 고국의 정을 각별히 생각하지 않으면 물건을 훔치기도 하였다. 그래서 결국 고려보의 사람들은 조선인을 멀리하게 되고 밥과 술도 간절히 부탁을 해야 팔곤 하였다. 그러면 사행단의 하인들은 이를 꽤심히 여겨 여러방법을 동원하여 그들을 골탕먹이고는 하여 마침내는 서로 상극이 되었다. 사행단이 고려보를 지나치면서 한 목소리를 내어 욕을 하면, 그들도 똑같이 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고려보의 풍습이 못됐다고 욕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고려보(高麗堡)에 이르렀다. 집들이 모두 띠 이엉을 이어 만든 것이어서 몹시 쓸쓸하고 궁핍해 보였다. 길 가는 사람에게 묻지 않아도 여기가 고려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서 정축년(丁丑年 병자호란 다음 해, 1637)에 청나라로 잡혀 온 사람들이 이곳에서 스스로 한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관동 지방 1천여 리에 무논이라고는 없는데, 단지 이곳만 논벼를 심어 농사를 짓는다. 떡이나 엿 같은 물건을 보면 본국(本國)의 풍속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날에 사행단이 이곳에 이르면, 고려보의 사람들은 사행단의 하인들이 사 먹는 술과 밥에 대해 종종 돈을 받지 않았다. 고려보의 여인들은 사행단을 반가워하며 낯을 가리지 않았고, 말이 고국 이야기에 미칠 때면 눈물짓는 이도 많았다.
그래서 하인들은 이것을 기회로 여겨서 술과 밥을 마음대로 요구하여 먹는 일이 많았고, 또 그릇이나 의복 같은 것을 강요하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는 주인이 본국의 정을 생각하여 각별하게 지키지 않으면, 하인들은 그 틈을 타서 도둑질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고려보 사람들은 우리 조선 사람들을 꺼리게 되었다. 사행단이 지날 때면 술과 밥을 감춰서 팔려고 하지 않았다. 간곡히 청하면 그제야 팔았고, 비싼 값을 부르거나 먼저 돈을 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럴수록 사행단의 하인들은 여러 방법으로 속여서 다시 그 분풀이를 하였다. 그렇게 되어 사행단과 고려보 사람들은 서로 상극이 되어 마치 원수 보듯 하였다. 사행단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고려보 사람들을 향해 일제히 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너희 놈들! 조선 사람의 자손이 아니냐! 너희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는데 어찌 나와서 절하질 않느냐!”
이렇게 욕지거리를 하면, 고려보 사람들도 역시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히려 이곳 고려보의 풍속이 매우 나쁘다고 욕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