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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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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사를 다녀온 역관의 이야기를 듣다
줄거리

역관 치형이 융복사와 저자거리를 둘러보고 왔는데, 융복사는 건축기술이 정교하고, 단청은 이전에 보지 못했을 정도로 화려하였다. 저자에는 상인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물품이 다양하였다. 절 동쪽 어귀에 있는 자명종과 윤도를 파는 가게의 주인에게 탁자위의 궤짝을 보여 달라고 하였더니, 주인이 열쇠로 궤짝을 여니깐 궤짝이 스스로 열리며 기이한 음악소리가 나고, 또한 앞쪽의 휘장이 스스로 걷히면서 옥으로 만든 대추만한 말과 팥알만한 사람이 무수히 나오고, 황제 앞의 수레와 장막 등이 빠진 것이 없이 스스로 돌아갔다. 또 안에 유리로 막힌 곳에도 코끼리와 말 탄 시위 등이 스스로 돌아가고 있었고, 수천명이 조회하는 모양이 귀신이 만든 것이 아니가 싶게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궤짝의 값이 백은 800냥이고, 서양나라의 자명종도 은자 30냥이다. 이 가게에 쌓인 것만 해도 값으로 따지면 수 억만냥 할테니, 중국에 재물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새로운 것이 코로 가루를 빨아들이는 담배가 있었다.

번역문

이날 역관 치형(致馨)이 융복사(隆福寺) 저자를 구경하고 왔다. 융복사는 명나라 경태(景泰) 5년(1454)에 지어졌다. 그가 보고 온 것을 대강 말하였다.
“이 절이 크고 화려하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작년에 큰 집 한 채에 불이 나서 다시 지을 때, 이 절 법당(法堂)을 헐어 그 재목으로 그 집을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법당은 또 다른 재목으로 고쳐지었는데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었으며, 사방의 익랑(翼廊) 여러 채도 다 새로 지은 것이라 합니다. 왜 굳이 이 법당 재목을 옮겨서 집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제작기술은 정교하고 신묘하였으며 그 빛나는 단청은 이전에는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절 안팎 문안의 넓은 곳에는 빈틈없이 장사치들로 가득 찼습니다. 기이한 보배와 형형색색의 물화를 다 기록할 수 없고, 잘 생긴 외모와 눈에 두드러지는 의복을 입고서 활기차게 떠들면서 분위기를 돋우는 사람들 중에는 조정의 관리 내지는 선비인 듯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양가죽 옷과 베로 지은 상복을 입고 온 자도 엄청나게 많았으니, 이는 어떤 풍속인지 모르겠습니다.
절 동쪽 어귀에는 가게가 하나가 있었는데, 여러 모양의 자명종과 윤도(輪圖)를 파는 곳이었습니다. 가게 안의 금칠한 탁자 위에는 큰 궤짝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사면 유리와 기둥을 다 침향(沈香) 나무로 기묘하게 새겨서 만들었습니다. 앞에는 유리 한 겹으로 가리고 유리 안에는 수(繡) 놓은 휘장을 드리웠는데 한가운데에 ‘인지서운(仁智瑞雲)’이라는 네 글자를 새겼습니다. 겉으로 보아도 신기한 글씨였습니다. 주인에게 궤짝 속을 좀 보여 달라고 하였더니, 주인이 궤짝 위로 열쇠 하나를 집어서 유리 안의 한 구멍에 넣고 두어 번 돌리자, 가운데 한 곳이 스스로 열렸습니다.
그 안의 자물쇠는 윤도 모양같이 만들었는데, 밖에다가 지남철(指南鐵)을 깔아서 두어 번 저절로 돌더니 궤짝 속에서 스스로 기이한 음악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수놓은 휘장이 또한 스스로 걷히면서 그 안에서 대추만한 말과 팥알만 한 사람이 무수히 나오는데 다 옥(玉)으로 만들었습니다. 각각 깃발과 도끼를 들었는데, 황제 앞에는 나열한 수레 장막이 하나도 빠진 것 없이 두어 줄로 천천히 돌아갔습니다.
또 안에 한 겹 유리로 막힌 곳에는 코끼리, 황옥교(黃屋轎), 말 탄 시위(侍衛)들이 좌우로 벌려져 있었는데 또한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유리로 8〜9층을 쌓았는데 저절로 돌고 있었고, 또 그 안에는 사람이 요동하는 듯싶더니 갑자기 금으로 만든 이 층 탑을 놓고 누런 양산을 받치더군요. 뜰아래 천 명의 관리들이 조회하는 모습도 만들어 놓았는데, 아주 세밀하고 정교하여 살아 움직이는 듯하였습니다. 이는 자못 귀신이 만든 것 같았습니다.
앞뒤로는 봉황(鳳凰)이 입에 붉은 종이를 물고 공중에서 날갯짓을 해 춤추면서 내려오니, 처음 열쇠를 넣어 돌릴 때부터 여러 번 변화하되 음악 소리는 잠시도 멈추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음악소리는 맑고 아름다웠는데 그 소리는 양금(洋琴)을 치며 생황(笙簧)을 불며 경쇠를 치면서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반나절 동안이나 곡조가 서로 호응하더니, 여러 겹 유리와 수놓은 휘장이 차례로 저절로 닫히자, 음악 소리도 따라서 그쳤으니, 그 신묘함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이 궤짝의 값이 백은(白銀) 800냥이라 하더군요.
그 밖에 자명종이 움직이면서 소리가 났는데 제작이 정밀하고 신기하였습니다. 서양 나라의 자명종도 하나의 값이 은자 30냥이라고 하였으니, 한 가게에 쌓인 것을 생각해보면 모두 다하면 몇 억 만 냥이나 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중국에 재물이 많다는 사실을 이것으로 미루어서 알 수 있었습니다. 한 절 안에 있는 무수한 물품들과 가게에서 파는 것들이 별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없고, 쓰임이 일정하지 않은 잡 물건에 가까우니 이상합니다.
비연(鼻煙)이라고 하는 것은 담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가는 가루로 만들어 작은 병에 넣었으니, 병은 한 치 남짓하였는데, 다 호박(琥珀)과 금패(金貝)와 수정(水晶) 만호(璊瑚) 같은 보배로 만들었습니다. 병을 기울여서 가루를 손끝에 찍어 코에 대고 기운을 빨아들이는데, 그 가루가 속으로 들어가며 재채기를 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이 병을 사용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처음은 만주 사람만 하다가 요사이는 한인(漢人)도 즐기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면 문득 병을 주며 쓰는 법을 가르치면서 말하기를, ‘코의 기운을 소통하는 것이니 아주 좋은 법입니다.’ 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