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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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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과 농짓거리 하다
줄거리

십삼산 마을 뒤의 절에 생황을 잘 부는 중이 있다기에 그를 불러다 불게 하였다. 그 소리가 맑고 시원스러워 들을 만하였다. 역관 중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을 시켜 화답하게 하였다. 그 중은 속인의 옷과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말과 태도가 허랑방탕해보여 산사람 티가 전혀 없어 그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는 경을 읽을 때에만 중의 모자를 쓰고, 경을 읽지 않을 때는 속인들처럼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는다고 했다. 내가 조롱삼아 그렇다면 마땅히 아내도 있을 것이라 했더니 중이 어찌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느냐 반문하였다. 그래서 내가 고기 먹는 중이 어찌 장가는 안 갔느냐 물었더니 비록 고기는 먹을 망정 참말 아내는 없다 했다. 그래서 내가 젊은 색시들이 중의 아내가 아니겠느냐 했더니 듣던 사람들이 크게 웃어댔다. 중도 웃으며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중에게 종이부채 몇 자루를 주었더니 자신은 중이라 받을 필요 없다 하여 그래도 중다운 말을 한다 싶었는데, 문에 나서면서는 다시 그것들을 달래서 가져 갔다.

번역문

십삼산(十三山) 마을 뒤의 절에 생황(笙簧)을 잘 부는 중이 있었기에 그를 불러다 불게 하였다. 그 소리가 맑고 시원스러워 들을 만하였다. 그가 부는 생황은 백동(白銅)으로 통을 만들고, 17개의 대롱을 박아 길게 부리가 나와 있었다. 역관 중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을 시켜 화답하게 하였다. 우조(羽調)를 부를 때는 간혹 1~2구 근사한 데가 있었다. 그러나 계면조에 이르러서는 성률이 완전히 달라 전혀 맞지 않았다.
그 중은 속인의 옷에 속인의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말과 태도가 허랑방탕해 보여 산사람의 티가 전혀 없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중이 대답하였다.
“경(經)을 읽을 때에만 중의 모자를 쓴다.”
또 말하였다.
“경을 읽는 때가 아니면 속인들처럼 술도 마시고 고기도 먹는다.”
내가 조롱삼아 말하였다.
“그렇다면 마땅히 아내도 있을 텐데.”
중이 대답하였다.
“중이 어찌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느냐?”
내가 말하였다.
“고기 먹는 중이 어찌하여 장가는 들지 않았소?”
그러자 중이 말하였다.
“비록 고기는 먹을망정 참말로 아내는 없소.”
그래서 내가 다시 말하였다.
“젊은 색시들이 중의 아내가 아니겠소.”
그랬더니 듣는 사람들이 크게 웃어댔다. 그 중도 역시 웃는 얼굴을 꾸며대며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종이부채 몇 자루를 주었더니, 중이 자기의 머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는 중이기 때문에 예법에 따라 선물을 받을 필요가 없다.”
내가 그래도 산사람인 중다운 말이라 여겼더니, 문에 나서면서는 다시 그 폐백을 달래서 가지고 갔다.
책문으로부터 북경까지는 십삼산이 꼭 반이다. 사행이 돌아올 때 이곳에 닿으면 먼저 군뢰(軍牢)를 보내어 의주로 안부 편지를 전하게 되고, 일행들도 그 편에 집으로 편지를 부치는 것이 전례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