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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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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최고 광경을 묻다
줄거리

북경에 다녀온 사람들을 만나 무엇이 장관이었나 물으면, 사람들마다 요동벌판이라고도 하고, 산해관이라고도 하고, 또 동악묘라고도 하는 등 다 제각각이다. 그러나 일류의 선비는 볼 것이 없다고 하여 그 이유를 물으니, 황제부터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깎았으니, 머리를 깎으면 모두 오랑캐인데 오랑캐에게 무엇이 볼게 있었겠냐고 반문한다. 이 말을 들은 무리들은 이것이 곧 의리라 생각하였다. 또 중류의 선비들은 제도와 법도와 풍속은 옛 중국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야만족의 말을 따르는 등 변화된 모습이다. 야만족을 소탕한 후에야 장관을 얘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명나라가 멸망하자 모두들 머리를 깍는 등 야만족이 되어버려 중국을 위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비록 오랑캐가 점령하였지만, 중국은 그대로 백성과 법률제도를 비롯한 훌륭한 문물은 그대로이며, 중국도 백성을 이롭게 하는 좋은 제도라 하면 비록 오랑캐의 제도라 해도 받아들였다. 이를 본받아 조선도 공업과 사업을 비롯하여 중국의 아름다운 문물을 배워야한다. 남의 10개 배울때 우리는 100개를 배워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어야 할 것이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자면 깨진 기와조각과 똥인데, 그 들은 깨진 기와조각을 버리지 않고,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내니 세상의 모든 무늬가 있는 것 같고, 또 뜰 앞에 벽돌을 깔지 못하는 경우에는 깨진 기와와 돌을 이용하여 꽃과 나무, 새와 짐승의 모양으로 깔아놓으니 아름다운 그림을 마당에 둘 수있게 되었다. 똥은 더러운 물건이지만, 거름으로 사용하게 되면 아껴서 사용하게 되는데, 말똥 등을 주워다가 헛간에 쌓아놓는데, 쌓는 모양이 네모뿐만이 아니라 8모, 6모, 누각모양으로 쌓으니, 똥을 쌓아놓는 맵시만 보고도 천하의 문물이 다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번역문

북경에 다녀온 선비를 처음 만나면 나는 반드시 이렇게 물었다.
“이보게, 이번 행차에 제일 장관(壯觀)인 게 무엇이었나? 제일 장관이었던 것 하나만 말해주게.”
그들은 제각각 자기가 본 것을 입에 나오는 대로 말했다.
“요동 천 리의 넓디넓은 들판이 장관이죠.”
“옛 요동의 백탑(白塔)이 장관이더군.”
“북경의 시가와 점포가 장관이오.”
“계문(薊門)의 숲이 장관이지.”
“노구교(蘆溝橋)가 장관이야.”
“산해관(山海關)이 장관이오.”
“각산사(角山寺)가 장관이오.”
“망해정(望海亭)이 장관이오.”
“조가패루(祖家牌樓)가 장관이오.”
“유리창이 장관이오.”
“통주(通州)의 주집(舟楫)들이 장관이오.”
“금주위(錦州衛)의 목축(牧畜)이 장관이오.”
“서산(西山)의 누대가 장관이오.”
“사천주당(四天主堂)이 장관이오.”
“호권(虎圈)이 장관이오.”
“상방(象房)이 장관이오.”
“남해자(南海子)가 장관이오.”
“동악묘(東岳廟)가 장관이오.”
“북진묘(北鎭廟)가 장관이오.”
대답이 분분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일류의 선비는 허망한 표정으로 얼굴빛을 바꾸며 말한다.
“도무지 볼 것이 없더군요.”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어째서 아무 것도 볼 게 없던가?”
“황제도 머리를 깎았고, 장군과 재상, 대신, 모든 관리들이 다 머리를 깎았으며, 선비와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 그렇소. 공덕이 은(殷)나라ㆍ주(周)나라와 같고 부강함이 진(秦)나라ㆍ한(漢)나라를 넘나든다 해도 사람이 생겨난 이래 아직껏 머리 깎은 천자는 없었다오. 또 비록 육롱기(陸隴其)ㆍ이광지(李光地)의 학문이 있고, 위희(魏禧)ㆍ왕완(汪琬)ㆍ왕사징(王士澂)의 문장이 있으며, 고염무(顧炎武)ㆍ주이준(朱彛尊)의 박학다식함이 있어도, 머리를 깎으면 즉시 오랑캐가 되는 것이라오. 오랑캐는 곧 짐승일 것이니, 우리가 그 짐승에게서 무얼 볼 게 있단 말이오.”
이것이 곧 으뜸가는 의리(義理)라 하여 이야기하는 이도 잠잠하고, 듣는 이도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중류의 선비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성곽은 만리장성에 남겨진 제도를 물려받았고, 건물은 아방궁(阿房宮)의 법도를 본떴으며, 서민들은 위(魏)나라ㆍ진(晉)나라의 부화를 숭배하고 있고, 풍속은 수(隋)나라ㆍ당(唐)나라 때의 사치함을 따라하고 있소. 신성한 성인의 땅이 더럽혀졌으니 그 산천은 피비린내 나는 고장으로 변했고, 성인의 자취가 가려지자 언어조차 야만족의 말을 따르게 되었소. 볼만한 게 무엇이 있겠소? 만일 10만 군사를 얻을 수 있다면 당장에 내달려 산해관으로 쳐 들어가서 중원(中原)을 소탕할 것이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장관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중략)…
마침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다시피 명나라가 멸망하자마자 천하에 머리란 머리는 죄다 깎아 버려 온통 오랑캐가 되고 말았다. 조선 땅 한 모퉁이 사람들은 이런 수모를 면하기는 하였지만, 중국을 위해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하루라도 잊혀질 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 사대부들이 춘추대의에 입각하여 중국을 떠받들고 오랑캐를 배척한다고 떠드는 자들은, 백 년을 하루같이 지내오면서 장관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떠받드는 것은 그것에만 국한되는 것이요, 오랑캐의 문제도 그것에만 국한될 뿐이다.
왜냐하면 중국의 성곽과 건물과 백성들은 예전과 똑같이 남아 있고, 정덕(正德)ㆍ이용(利用)ㆍ후생(厚生)의 도구도 파괴된 것이 없으며, 최(崔) 씨, 노(盧) 씨, 왕(王) 씨, 사(謝) 씨의 씨족도 없어지지 않았고, 주돈이(周敦頤)ㆍ장재(張載)ㆍ이정(二程)ㆍ주자(朱子)의 학문도 사라지지 않았으며, 하(夏)ㆍ은(殷)ㆍ주(周) 이후로 성스럽고 밝은 임금들과 한(漢)ㆍ당(唐)ㆍ송(宋)ㆍ명(明)의 아름다운 법률 제도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 저들이 오랑캐이기는 하지만, 중국이 이익이 될만하고 그것으로써 오래 누릴 수 있는 일인 줄 알기만 할 때는 억지로 빼앗아 와서라도 이를 지켜냈고, 만약 본래부터 있던 좋은 제도가 백성에게 이롭고 국가에 유용할 때는 비록 그 법이 오랑캐로부터 나왔다손 치더라도 주저 없이 이것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더구나 삼대 이후의 성왕(聖王)과 현인, 한ㆍ당ㆍ송ㆍ명 등 여러 나라의 고유한 문물은 말할 것도 없다.
성인께서 『춘추(春秋)』를 지으실 때는 물론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쳤으나, 그렇다고 오랑캐가 중화를 어지럽혔다는 것을 분하게 여겨서, 중국의 숭배할 만한 보물마저 다 물리쳐야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제 사람들이 정말 오랑캐를 물리치려거든 중국의 발달된 제도를 모조리 배우고, 우리나라의 유치한 수준의 문화를 계발하여 밭 갈고 누에치고 그릇 굽고 풀무질 하는 것에서부터 공업ㆍ상업 등에 이르기까지 배우지 않는 게 없어야 할 것이다. 남이 10가지를 배울 때 우리가 100가지를 배워서 무엇보다 먼저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이익을 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회초리를 마련해 두었다가 저들의 굳은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를 쉽게 매질할 수 있도록 한 뒤에야 중국에 아무런 장관이 없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삼류 선비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겠다.
“그들의 장관은 기와 조각에 있고, 또 똥 부스러기에도 있다.”
깨어진 기와 조각은 모든 사람들이 다 버리는 물건이지만, 그들은 민간에서 담을 쌓을 때 담 높이가 어깨에 솟을 경우, 깨진 기왓장을 2개씩 포개어서 물결 무늬를 만들어 붙이거나, 혹은 4개씩 모아서 둥근 고리처럼 만들어 붙인다. 또 4개씩 등을 맞대어 옛날 엽전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구멍난 곳이 영롱하고 안팎이 서로 어리비쳐서 저절로 좋은 무늬가 이루어진다. 깨진 기와 쪽을 버리지 않고 활용하니, 천하의 무늬가 모두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집마다 뜰 앞에 벽돌을 깔지 못할 경우 여러 빛깔의 유리 조각이나 기와 조각, 혹은 시냇가의 둥근 조약돌을 주워서, 꽃ㆍ나무와 새ㆍ짐승의 모양으로 깐다. 그렇게 하면 땅이 진 것을 막을 수 있으니, 이것은 바로 부서진 자갈돌을 버리지 않은 덕에 천하의 아름다운 그림을 마당에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똥은 아주 더러운 물건이지만 이것을 밭에 거름으로 쓸 때는 황금처럼 아끼게 된다. 그래서 길에 내다 버린 똥이나 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가 삼태기를 들고 말 뒤를 따라 다니며 똥을 줍는다. 이렇게 모은 똥을 헛간에 쌓아 두는데, 혹은 네모나게 혹은 8모로 혹은 6모로 혹은 누각 모양으로 만든다. 한번 쌓아 올린 똥거름의 맵시로 봐서도 천하의 문물제도는 벌써 여기 버젓이 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저 기와 조각이나 똥 무더기가 모두 장관이다. 굳이 성지(城地)ㆍ궁실ㆍ누대ㆍ시장ㆍ사찰ㆍ목축이라든지, 또는 저 광막한 들판이라든지, 자욱한 숲속의 꿈같은 풍경만 장관이라고 부를 필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