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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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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를 파는 노인에게 속아 넘어가다
줄거리

날이 저물어 서둘러 말을 달려 참으로 가는 도중에, 참외밭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 말 앞에 엎드려 말하기를, 조금 전에 조선인 40~50명이 지나가다 참외를 처음에는 돈을 주고 사먹더니, 나중에 돈을 지불하지 않고 1개씩 가져가 항의를 하였으나 도저히 당할 수 없었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러면서 청심환을 달라고 졸라 청심환이 없다고 하니, 참외를 팔아달라고 졸라 마침 목도 마르고 하여 참외 1개를 먹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창대와 장복에게도 2개씩 먹게하고, 4개는 사가지고 가는데, 참외 9개의 값으로 노인은 80푼을 요구하여, 처음에 50푼을 주니, 화를 내며 받지않아, 주머니를 다 털어 보여주면서 71푼을 주니 그제서야 받았다. 가련하게 보여 비싼 값에 억지로 참외를 판 노인도 통탄스런 일이지만, 우리나라 하인이 길에서 행패를 부리는 일이 더욱 한심하다. 참에 도착하여 참외를 주면 그런 얘기를 하니, 마두들이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면서 청심환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다고 하니 속은 것이 분해 눈물이 다 났다.

번역문

날이 저물어가자 먼 곳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번지는 모습이 보였다. 말을 채찍질하여 참(站)으로 달리는데, 참외밭에서 한 늙은이가 나와 말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3〜4칸되는 초가집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늙은 놈은 혼자 길가에서 참외를 팔아서 목에 풀칠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까 당신네 조선 사람 40〜50명이 이곳을 지나다가 잠시 쉬면서 처음엔 값을 내고 참외를 사 먹더니, 떠날 때는 참외를 1개씩 손에 쥐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왜 그들의 우두머리 어른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 노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어른은 귀먹고 벙어리인 척하시는데 나 혼자 어찌 그 40〜50명 힘센 장정을 당하오리까. 방금도 그 사람들을 쫓아갔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가는 길을 막으며 참외로 냅다 저의 얼굴을 갈기니, 별안간 눈에서 번갯불이 일어났고 아직도 얼굴엔 참외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노인은 나에게 청심환을 달라고 졸랐다. 내가 없다고 했더니, 그는 창대(昌大)의 허리를 꼭 껴안고 참외를 팔아달라고 떼를 쓰고는 참외 5개를 앞에 갖다 놓는다. 마침 내가 목이 마르던 참이라 1개를 벗겨서 먹었다. 향기와 단맛이 아주 기가 막혔다. 그래서 장복(張福)에게 남은 4개를 마저 사가지고 가서 밤에 먹자고 했다. 그들에게도 각기 2개씩을 먹였다.
모두 9개를 먹었는데, 늙은이는 80푼을 달라고 떼를 쓴다. 장복이 50푼을 주자 그 노인은 성질을 내며 받지 않았다. 창대와 둘이 주머니를 털어 세어보자 모두 71푼이었다. 그 돈을 다 주기로 했다. 내가 먼저 말에 오르면서 장복을 시켜 주게 하였다. 장복이 노인 앞에서 주머니를 다 털어 보여주자 그제야 그 노인이 묵묵해졌다. 그 노인은 애초에 눈물을 흘려서 가련한 빛을 보인 다음, 억지로 참외 아홉 개를 팔고 1백 푼에 가까운 비싼 값을 내라고 떼를 썼으니, 심히 통탄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우리나라 하인들이 길에서 못되게 구는 것이 더욱 한심한 일이었다. 어두워진 뒤에야 참에 이르렀다. 참외를 내어 청여(淸如)ㆍ계함 들에게 주어 저녁 뒤 입가심으로 먹게 하고, 길에서 하인들이 참외를 빼앗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여러 마두들이 말했다.
“그런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외딴집 참외 파는 늙은 것이 본래 간교하기 짝이 없군요. 서방님이 혼자 떨어져 오시니까 거짓말을 꾸며서 자못 가엾은 꼴을 지어서 청심환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속은 것을 깨달았다. 그 참외 사던 일을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다. 대체 그 갑작스런 눈물은 어디서 솟았을까.
시대(時大)가 말했다.
“그 놈은 바로 한인(漢人)일 겁니다. 만주인은 그렇게 요악한 짓을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