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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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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당에 가다
줄거리

비가 오는 날, 천주당에 가보니 나무는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은 것이 중국의 건축양식과는 많이 다르다. 안으로 들어가니 깊은 골짜기와도 같았고, 어린아이와 여인, 그리고 노인 등을 비롯하여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건물은 3개의 기둥이 있는데 북쪽 벽에 불당과 같은 나무로 된 것이 있고, 그 곳에도 부인이 어린아이 보호하는 그림을 비롯하여 노인이 십자가에 매달려 떨어지려는 아이를 받으려하는 그림이 있었는데, 이 그림은 괴이하여 별로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는 야소이고, 여인은 야소의 어미라 하였다. 그 밖에도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이곳 천주당은 근래에 불이나서 다시 지었는데 어느 작은 문을 열어보니 개를 그린 그림이 있고, 그 밑에 살아있는 개가 있는데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서쪽에 의기를 담아두는 집이 있는데 관리자가 구경을 허락치않아 매우 아쉬웠다.

번역문

비가 내렸다.
남관에 유숙하였다.
오후에 천주당(天主堂)에 갔다. 천주당은 순성문(順城門) 동쪽에 있었는데, 전부 벽돌을 쌓아 지었고 나무라고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 천주당은 매우 높고 넓었으며 중국에서 사용하는 칸살이나 맹첨(甍簷)의 제도를 사용하지 않은 건축물이었다. 흠천감관(欽天監官) 2명은 서양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때마침 그들은 원명원(圓明園)에 근무하러 가서 부재중이고 다만 이곳을 지키는 한족들만 있었다.
주렴을 걷고 문으로 들어가니 마치 깊은 골짜기에 들어선 것과 같아서 사람의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장을 바라보니 마치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 같았는데, 거기에는 여기저기 인물화가 그려져 있었다. 한 어린 아이는 놀란 눈을 하고 위를 쳐다보고 있고, 한 부인은 걱정스런 모습으로 그 어린 아이를 어루만지고 있으며, 한 늙은이는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손을 비비며 그 어린 아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듯 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구름이 어린 아이를 감싸고 있었고 그 구름 위로 머리만 내어 놓은 사람이 무수히 많이 그려져 있었다.
그 집은 3개의 기둥으로 되어 있었다. 첫 번째 기둥의 북쪽 벽에 마치 불당(佛幢)과 같은 나무로 만든 것이 있었다. 거기에도 부인이 병든 아이를 보호하는 그림이 있었는데, 위에는 백조 1마리가 날개를 펴고 입으로 하얀 기운을 토해내며 부인의 이마에 쏘아대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의 벽에도 또다시 3개를 설치하여 두었다. 그곳에는 2개의 날개가 달린 여자가 창을 가지고 사람을 찌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또 어떤 늙은 사람이 두 손을 벌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떨어지려는 어린 아이를 받으려는 모습을 한 그림도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림은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매우 괴이하기도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좋지 않은 생각이 들게 하였다. 일반적으로 병든 어린 아이는 이른바 천주교에서 말하는 야소(耶蘇)이고 근심하고 있는 부인은 야소의 어미라고 하였다.
서양 사람은 성품이 깨끗하여 집안 벽장 위에 붉은 나무 그릇에다가 왕겨 따위를 담아서 사람의 침을 그곳에 뱉게 한다고 한다. 옥상에 또 누각이 있었고 밖으로 5개의 창문이 나있는데, 납지(蠟紙)로 발라서 광선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 유리와도 같았다. 그곳을 지키는 사람은 주인이 없다는 이유로 옥상에 올라가서 구경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 그 위는 풍로고(風鑪鼓)와 기상악(氣象樂) 등의 악기를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매우 시끄러웠다.
이곳 천주당은 근래에 불이 나서 새로 지었다고 한다. 이 집은 전체가 벽돌로 이루어져 있어 불에 타지 않을 듯하지만 집은 새로 지은 것이었다. 당(堂)의 오른쪽으로 작은 문이 하나 나 있고 문 안으로는 작은 길이 나 있었다. 작은 문을 통해 바라보니 북쪽 벽에 철사 줄에 목이 매인 큰 개의 그림이 있었는데, 얼핏보니 물려고 덤비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 그림 밑에는 살아 있는 개 몇 마리가 그늘에 누워있었는데, 그림의 개와 살아 있는 개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서쪽 담 밖에 의기(儀器)를 간직하여 두는 집이 있었는데, 천주당을 지키는 사람이 끝내 구경하기를 허락하지 않아 보지 못하였다. 매우 한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