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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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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사람이 표류하여 중국까지 가다
줄거리

흑산도 백성이 남해에 표류하여 이리저리 헤매다가 이곳에 도착하여 관사에 머물고 있는 사람 4명이 있었다. 그들은 신유년(1802) 겨울에 물고기를 사기 위해 곡물 조금을 배에 싣고 소흑산도에서 대흑산도로 갔다가 이듬해 정월 돌아오는 길에 바다 가운데서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유리국을 거쳐 연경 진공사를 따라 배를 출발시켰으나 10여 일 만에 또 바람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고 바닷물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던 끝에 어느 한 곳에 정박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 그들의 힘을 입어 집에서 쉴 수 있게 되고 쌀을 무역하면서 서로 돕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어딘지 물었더니 일록국이라고 하였다. 얼마후 길을 떠나 15일 만에 사분지에 닿았다. 또 석달을 가서 소주에 닿아 여기서부터는 배에서 내려 육지로 갔는데 관가에서 배풀어준 것이 아주 후했다. 10월 3일 소주에서 출발하여 12월 4일에 북경에 도착하였는데 예부에서 입고 먹을 것을 제공해주었고 절도사가 올 때를 기다리게 했다고 한다. 천하를 두루 구경하고도 무식한 탓에 그것을 만분의 일도 기록하지 못했으니 애석하다.

번역문

우리나라의 흑산도 백성으로서 남해에 표류하여 이리저리 헤매다가 이곳에 도착하여 관사에 머물고 있는 사람 4명이 있었다. 이날 밤 그들을 불러다가 그 전말을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신유년(1802년) 겨울에 물고기를 사기 위해 곡물을 조금 배에 싣고 소흑산도에서 대흑산도로 갔다가 이듬해 정월 돌아오는 길에 바다 가운데서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10일 만에 어느 한 항구에 닿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어떤 사람이 물 건너편에서 저희를 맞이하였는데, 그 사람은 우리나라 말을 조금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여기가 어느 지방이냐고 물었더니, 그곳이 바로 유리국(琉璃國)이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관에서 배를 검색하더니 곧 관청에서 배를 안전하게 접수시키고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10월 초에 그들의 연경 진공사(燕京進貢使)를 따라서 배를 출발시켰습니다. 그러나 10여 일 만에 또 바람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고 진공사의 배 2척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닷물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던 끝에 어느 한 곳에 정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덕 위에 흰옷 입은 사람이 있다가 멀리서 바라보더니 곧 저희에게 달려왔습니다. 배에 같이 탔던 사람들은 모두, ‘이제야 살아날 길이 생겼구나!’ 생각하고는 그를 따라간 자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어떤 사람이 급하게 돌아와 울면서 말하기를, ‘우리 무리들 태반이 그들에게 피해를 당했다. 그래서 나는 도망해 왔다.’고 하기에, 드디어 그와 함께 서둘러 배를 옮겨 바다 가운데에 닻을 내리고는 정박할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되풀이한 지 4일째 되던 어느 날, 갑자기 바다를 가로질러 달려온 자그마한 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소주(蘇州) 사람으로서 상업을 하던 차에 여기에 이르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들의 힘을 입어 편안한 집에서 쉴 수 있게 되었고, 또 쌀을 무역하면서 서로 돕게 되었습니다. 이 지방이 어느 지방이냐고 물었더니, 일록국(日鹿國)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또 길을 떠나 15일 만에 사분지(沙分地)에 닿았으니, 이날은 바로 3월 그믐날 이었습니다.
또 석 달을 가서 소주(蘇州)에 닿았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배에서 내려 육지로 갔는데, 관가에서 베풀어 준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10월 3일 소주에서 출발하여 12월 4일 북경에 도착하였습니다. 예부에서 입고 먹을 것을 제공해 주었고 절도사가 올 때를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일행 중 두 사람은 다른 배에 탔었는데, 여태껏 이르지 않으니, 그의 생존 여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보면 그들이 천하를 훌륭히 구경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무식한 탓에 그것을 만분의 일도 기록하지 못했으니, 애석하다.
표류된 사람의 성명은 즉, 문호겸(文好謙)ㆍ문순득(文順得)ㆍ박양신(朴亮信)ㆍ이백근(李百根)ㆍ이중태(李重泰)ㆍ김옥문(金玉文)인데, 문순득과 김옥문은 여태껏 이르지 아니한 자들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들을 장하게 여겨서 술 한 잔을 가득히 부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