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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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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움증에 걸려 고생하다
줄거리

심하역에 도착한 뒤에 묵었던 이성사에서 아침을 먹었다. 저녁에 산해관에 도착하니, 강물이 불어 몽고말을 타고 건너 성안에서 묵었다. 북경에는 주로 여름에 발발하는 가려움병이 있었다. 우리가 중국에 들어갔을 때 봉림대군과 한흥일이 모두 그 감당하기 어려움을 말했었다. 북경에 들어가서는 이 병을 면했으나 통주로 돌아왔을 때, 내 왼팔에 5~6군데 부스럼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가려움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 며칠 사이에 온 몸에 퍼져 두 손으로 박박 긁어 피가 흐를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가려움은 오히려 그치지 않아 밤낮으로 고생하였고, 더욱 극심해졌다. 대군이 놀리며 말했다. “이것은 악성 종기일세. 어떻게 건드릴 수 있겠나?” 얼마 안 있어 일행 모두 일시에 가려움증이 발발하였다. 대군 또한 이를 피해가지 못하고 가려움증에 걸려 그 괴로움이 더욱 심했다. 내가 말하였다. “아랫사람을 존중하여 참으로 직접 꾸짖지 못하셨지만, 전날의 악성 종기라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니 경솔히 말씀하신 듯합니다.” 그랬더니 대군이 크게 웃었다.

번역문

맑음.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출발하여 심하역(深河驛)에 도착한 뒤 전에 묵었던 이성사(二聖寺)에서 아침을 먹었다. 주지 스님이 문에 나와 환영하고 다과를 성대히 차려 대접하였다.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에 작은 마을의 나무 아래에서 쉬었다. 저녁에 산해관(山海關)에 도착하니, 강물이 불어 몽고말을 타고 건너 성안에서 묵었다.
북경에는 주로 여름에 발발하는 가려움병이 있었다. 우리가 중국에 들어갔을 때 봉림대군과 한흥일(韓興一)이 모두 그 감당하기 어려움을 말했었다. 북경에 들어가서는 이 병을 면했으나 통주(通州)로 돌아왔을 때, 내 왼팔에 5〜6군데 부스럼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가려움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 며칠 사이에 온 몸에 퍼져 두 손으로 박박 긁어 피가 흐를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가려움은 오히려 그치지 않아 밤낮으로 고생하였고, 더욱 극심해졌다. 대군이 놀리며 말하였다.
“이것은 악성 종기일세. 어떻게 건드릴 수 있겠나?”
얼마 안 있어 일행 모두 일시에 가려움증이 발발하였다. 대군 또한 이를 피해가지 못하고 가려움증에 걸려 그 괴로움이 더욱 심했다. 내가 말하였다.
“아랫사람을 존중하여 참으로 직접 꾸짖지 못하셨지만, 전날의 악성 종기라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니 경솔히 말씀하신 듯합니다.”
그랬더니 대군이 크게 웃었다.
이날은 90리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