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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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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달리는 사람들을 보다
줄거리

팽관을 찾아 선무문 밖으로 나갔다. 이날은 마침 기관들이 재주를 시험하는 날이었는데 먼저 모인 수십 명이 차례로 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달리는 법이 익숙해서 잠깐 사이에 벌써 수백 보 밖을 달려가고 있었다. 모두 빈손으로 활을 당기고 창을 쓰는 시늉을 해보이며 개중에는 담배를 피우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태연하기가 마치 땅 위에서나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내게 활을 주며 잡아보라고 했다. 활을 쏠 줄 모른다며 사양을 했더니 당신 모자에 깃을 꽂을 것을 보면 시위인 것 같은데 못 쏠 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웃으며 활을 잡아보였더니 모두 잘 잡는다고 하며 내 벼슬과 계습을 묻고 관제와 과거법 등을 물었다. 나는 간단히 대답을 해주었더니 어떤 사람이 만주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장난삼아 할 줄 모른다고 했더니, 그 사람은 웃으며 만주말을 하면서 왜 모른다고 하느냐고 하였다. 그들과 농담도 하고 중국 말과 우리나라 말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한 뒤 팽관과 만날 약속 때문에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번역문

팽관(彭冠)을 찾아 선무문 밖으로 갔다. 나귀를 타고 정양문을 나와 성을 따라 서쪽으로 오는데 성 밑에서 해자가 있는 언덕까지 수십 보 되는 펀펀한 곳에, 성안에 있는 기하(旗下)들로 활을 쏘고 말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성남은 한결 더 성하였다.
이날은 마침 기관(旗官)들이 재주를 시험하는 날이었는데 먼저 모인 수십 명이 차례로 서로 뛰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뛰려고 할 때면 몸을 약간 굽히고 등짝을 칠 뿐 채찍을 때리지는 않았다. 말이 달리는 거리는 우리나라의 3배쯤 되는데 마구에 있는 말들도 다 크고 건장해 보였다.
달리는 법이 익숙해서 잠깐 사이에 벌써 수백 보 밖을 달려가고 있었다. 모두 빈손으로 활을 당기고 창을 쓰는 시늉들을 해보이며 개중에는 담배를 피우고 웃으며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는데 태연하기가 땅 위에서나 마찬가지다. 돌아서고 늦추고 빠른 것이 사람과 말이 서로 익어 있었다.
옛 말에 어양돌기(漁陽突騎)ㆍ북락효기(北駱梟騎)란 것이 헛말이 아니었다. 개중에 말을 빨리 달리게만 할 뿐 감히 뛰지를 못하고 말이 뛰려고 하면 고삐를 당겨 못하게 하였다. 전에 조참날 보면 시위들이 말을 몰 때 다 그런 식을 썼는데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세가탈(細加脫)이란 것이다. 나귀에서 내려 잠시 앉아 있는 동안 수백 명이 모여들었는데 모두 몸들이 건장하고 씩씩해 보였다. 개중에 공작털을 쓰고 있는 사람은 시위관이다. 한 사람이 내게 활을 주며 잡아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다음과 같이 사양하였다.
“저는 동쪽 나라에서 온 수재(秀才)로서 활을 쏠 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 모자에 깃을 꽂은 것을 보면 역시 시위인 것 같은데 활을 못 쏠 리가 있느냐?”
내가 웃으며 활을 잡아보였더니 모두들 잘 잡는다고 말하고 잇달아 내 벼슬과 계급을 묻고 또 관제와 과거법 같은 것을 물었다. 나는 대충 사실대로 대답해 주었다. 어떤 사람이 나서며 만주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장난삼아 만주말로 할 줄 모른다고 했더니 그 사람은 웃으며 만주말을 하면서 왜 모른다고 하느냐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이 나서며 몽고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몽고 사람인 모양이다. 나는 또 장난삼아 몽고말로 할 줄 모른다고 하였다. 여러 사람이 온통 웃으며 기뻐들 하였다. 그리고는 나보고 모든 말을 두루 다 잘한다면서 서로 다투어 만주말과 몽고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손을 모아 공손히 대답하였다.
“처음으로 중국 들어와서 한어를 약간 하기는 하나 똑똑치가 못하고 만주말과 몽고말은 한두 마디 우연히 배워 알 뿐인데 그저 웃기 위해 그런 것뿐이오.”
그랬더니 그들은 어떤 사람은 좋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이 지금 우리말이 달리는 것을 보았는데 당신 나라와 비교해 어떠냐?”
내가 대답하였다.
“우리나라는 모두 과하소마(果下小馬)로 진중에서 오로지 달음질하며 쏘는 데만 쓰는데, 각종 화기들이 정밀하고 예리해서 사람을 백 보 밖에서 죽일 수 있으나 말달리기만은 중국을 감히 따를 수 없다.”
여러 사람이 말하였다.
“말 1마리 달리는 것쯤 그리 볼만한 것이 못되지만 노야께서 재주를 부리며 2마리를 한꺼번에 타고 가는 것은 정말 볼만하오.”
그러면서 날보고 좀 더 기다리라고 하였다. 노야란 그들의 장령을 말하는데 아직 미처 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팽관과 만날 약속 때문에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왔는데, 그 뒤로 2번 다시 가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