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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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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구경하다
줄거리

거리에 대나무를 얽어 만든 건물이 있었는데, 바로 연극을 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남자들이 담을 치듯 빙 둘러 모여 있었다. 연극을 하는 장소에 마주한 곳에 인가가 있었다. 그 집 문 안에는 캉이 하나 있었는데, 창문 안에는 많은 여자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캉에 앉으려 했으나 여인들이 자리를 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문 밖으로 나와 있었다. 잠시 숙소에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연극을 보는데, 어떤 사람이 연극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무대에 등장했던 사람들은 막이 바뀔 때마다 노래를 불렀는데 그 소리가 아주 맑고 아름다워서 듣기 좋았지만, 노래 가사의 의미는 알 수 없어서 별 맛이 없었다.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모두 짧은 구절로 이루어진 말이거나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도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다. 관람자들은 모두 돈을 내고 보는데,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연극 공연은 모두 역사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서, 내용은 도덕적인 선이나 악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연극을 보면 권선징악을 가르칠 수 있었다. 게다가 옛날의 관복 제도나 중국의 풍속에는 살펴볼 만한 것이 많다. 지금 한족의 후예가 중화의 제도를 자랑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 연극 덕분이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보면 배우도 없어서는 안 될 직업이다.

번역문

어느 상점에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가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는 찰원(察院) 서쪽편에 있었다. 북경으로 갈 때 묵었던 숙소와 몇 집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집은 제법 컸지만 퍽 낙후되어 보였다. 천정과 창문의 종이가 다 찢겨져 있었다. 큰형님은 바깥의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중간 문을 지나 동쪽 방으로 들어갔다.
거리에 대나무를 얽어 만든 건물이 있었는데, 바로 연극을 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남자들이 담을 치듯 빙 둘러 모여 있었다. 큰형님은 부사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가서 부사와 서장관 등과 함께 구경하였다. 연극을 하는 장소에 마주한 곳에 인가가 있었다. 그 집 문 안에는 캉이 하나 있었는데, 창문 안에는 많은 여자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선흥이가 나를 끌고 안으로 들어가서 캉에 앉게 하였다. 하지만 여인들이 자리를 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문 밖으로 나와 앉았다.
그 여자들 중에 12살쯤 된 만주족 소녀가 있었다. 얼굴이 예쁘고 복스럽게 생겼고 연지와 분칠은 하지 않았다. 연녹색 비단옷을 입고 머리에는 꽃비녀를 꽂았고 귀고리를 달고 있었다. 주석으로 만든 백색 호리병을 들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아주 정교했다. 그 호리병은 차 주전자였다. 그 소녀는 호리병에 담긴 차를 작은 잔에다 조금씩 자주 따라 마시면서 함께 온 사람들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소녀의 행동거지를 볼 때 천한 신분 같지는 않았다.
연극을 보다가 잠시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그때 자칭 수재라고 하는 만주인 2명이 찾아와 잠깐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 사람은 이영소(李永紹)라는 사람으로 나이는 26세라고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양대유(楊大有)라는 사람으로 29세라고 하였다.
선흥이가 와서 연극이 좀 더 재밌어지고 있다고 말하기에 다시 나가서 구경했다. 잠시 후 연극은 끝이 났다. 그 뒤 공연한 연극이 5개였다.
첫 번째 작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장삼을 입고 두건을 쓴 소년 하나가 방에서 나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관원으로 분장한 사람이 그 소년 앞에 서서 들고 있던 책 1권을 소년에게 주자, 소년이 의자에서 일어나 받았다. 그러자 5개 군대를 상징하는 5명의 기병이 그 소년을 데리고 4〜5번 무대를 돌다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중간에 절차가 많았는데 일일이 기록할 수가 없다. 역관을 시켜서 이게 무슨 연극을 공연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어떤 사람이 ‘반초만리봉후(班超萬里封侯)’라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작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두건을 쓰고 빨간 도포를 입고 옥대(玉帶)를 두른 사람이 방에서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 사람은 탁자에 몸을 기댄 채 사방을 돌아보다가 성질을 내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시중드는 몸종 몇 명이 무대 양쪽에서 달려 나왔다. 그 사람은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를 한 바퀴를 배회하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조금 있다가 몸종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 사람은 탁자 위에 종이를 펴 놓고 붓을 들어 글을 쓰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런 행동을 몇 차례 반복하였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바깥을 사방으로 두루 살펴보았는데, 이것은 밖에 엿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다시 앉아서 젓가락으로 촛불을 휘적거리더니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마침내 종이에다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에도 자주 사방을 돌아보았다. 글씨를 쓴 뒤에 종이를 소매에 넣고 또 다시 좌우를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 사람은 혼자 놀라면서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불안해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공중에서 대포 소리가 터졌고, 그 사람은 깜짝 놀라 넘어졌다. 그러자 몸종들이 집에서 나와 부축해서 일으켰다. 한참 뒤 그 사람은 간신히 눈을 떴지만, 몹시 불안해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때 중년의 여인이 나와서 그 사람과 마주 앉아 무슨 말을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말을 알아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이 연극은 송나라 때의 간신 진회(秦檜)가 충신 악비(岳飛)를 죽인다는 내용을 연출한 것으로, 제목은 ‘진회상본구살악무목(秦檜上本構殺岳武穆)’이었다. 진회가 촛불 아래에서 글을 쓰려다 멈추어서 사방을 둘러보았던 것은 남들이 알까 두려워하는 것을 연기한 것이다. 또 때때로 놀라는 모습은 악비를 죽인 뒤 마음이 불안했던 상황을 연기한 것이다. 대포 소리가 나자 땅에 넘어진 것은 악비의 혼백에게 얻어맞은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년의 여인은 진회의 아내로서, 동쪽 창문가에서 진회의 계략에 찬동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었다. 진회는 쳐다보는 시선이 바르지 못했고 얼굴에 붉은 분을 칠해서 더 미워보였다. 수염은 사람 머리카락을 엮어서 턱 밑에 매어 놓았다. 모습과 옷차림이 마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조조(曹操)와 비슷해보였다. 세 번째 작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한 여인이 등에 짐을 지고 손에 우산을 들고 먼 길을 여행하는 행색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구경꾼을 향해 무슨 말을 하는데, 그 소리는 무언가를 하소연하는 것처럼 들렸고 어떤 때는 노래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 연극은 남편이 멀리 떠난 뒤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직접 남편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즉 “맹강(孟姜)이라는 여인이 남편을 그리워한다.”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 여인은 이전 연극에서 진회의 아내로 분장을 하였던 사람이었다. 그 배우는 사실 남자인데, 목소리와 외모는 정말 여자 같았다.
네 번째 작품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어떤 뚱뚱한 사람이 붉은 적삼을 걸치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 나왔다. 그 사람은 뒷짐을 지고 이리저리 오갔는데, 그 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옷 보따리를 가지고 나와 그 사람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팔을 흔들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의자 위에 벌렁 누워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껄껄대며 웃었고, 연신 부채질만 하였다. 옷 보따리를 가지고 온 사람이 여러 번 들어갔다 다시 나와서 누누이 말을 하였지만, 그 사람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모두 웃었다. 결국 옷을 들고 있던 사람은 웃으면서 무대에서 들어가 버렸다.
어떤 사람이 이 연극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수재로서 상공(相公)이라 불리는 사람인데, 술집에 옷을 잡히고 술을 마신 뒤 오랫동안 옷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술집 주인이 그의 옷을 가지고 와서 술값을 내고 찾아가라고 재촉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상공은 미련을 부리며 듣지 않았던 것이다. 이 연극의 모양은 우리나라 배우들이 연기하는 ‘선배희(先輩戱)’와 비슷했다.
마지막 연극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고, 군졸 세 사람이 깃발과 창검을 들고 좌우에 배열하여 마주 서 있었다. 군관으로 분장한 몇 사람이 밖에서 달려들어 오더니, 그 사람 앞에 와서 꿇어앉아 명을 받는 것이었다.
이상 세 편의 연극에도 분명 제목이 있을 텐데, 연극의 제목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군관들과 군졸이 입은 군복은 우리나라 것과 아주 비슷했다. 전립(氈笠)은 창 둘레가 좁고 위쪽이 높았지만, 모자 윗부분과 붉은 색 끝은 우리와 똑같았다. 이것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군복도 중국 것을 모방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극장의 모양은 크기가 세로 3길, 너비 2길 정도 되었다. 지붕은 갈대로 덮었고, 높이는 땅에서 6〜7척쯤 되었다. 밑에는 시렁을 만들어 판자를 깔았는데, 앞쪽 반은 무대를 만들었고 뒤쪽 반은 방을 만들었다. 그 방 3면을 갈짚으로 둘러쳐 벽을 만들었고, 방과 무대 사이를 휘장으로 가려놓았다. 배우는 모두 10여 명이었는데, 등장하는 사람만 무대에 나왔고 나머지는 모두 방에 있다가 자신이 연기할 차례가 되었을 때 방에서 나왔다. 옷을 갈아입을 때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연극에 필요한 소품들은 모두 그 방 안에 갖추어 놓았다.
무대에 등장했던 사람들은 막이 바뀔 때마다 노래를 불렀는데, 방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 노랫소리에 화답을 하였고 거문고와 피리 등을 함께 연주하였다. 그 소리가 아주 맑고 아름다워서 듣기 좋았지만, 노래 가사의 의미는 알 수 없어서 별 맛이 없었다.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이곳 사람들도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한다. 마침 통관 오옥계(吳玉桂)가 왔기에 내가 물어보았다.
“당신은 저 배우들의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있소?”
그러자 오옥계는 자기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 가사가 모두 짧은 구절로 이루어진 말이거나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들은 모두 남방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연할 수 있는 곳이면 아무리 멀어도 어디든지 간다고 한다. 주(州)ㆍ부(府)ㆍ촌(村)ㆍ진(鎭)ㆍ시(市)ㆍ방(坊) 할 것 없이 번화한 곳에는 모두 극장이 있고, 극장이 없는 곳이면 임시로 갈대 집을 만들어 공연한다고 했다. 길게는 10여 일 동안 계속하고 짧게는 며칠만 공연하고 다른 지방으로 간다고 하였다. 공연이 있으면 구경 오는 사람들이 물결처럼 몰려드는데, 어떤 사람은 수십 리 밖에서도 찾아와 구경한다고 한다.
관람자들은 모두 돈을 내고 보는데, 그 값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연극 공연은 모두 역사나 소설을 각색한 것으로서, 내용은 도덕적인 선이나 악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연극을 보면 권선징악을 가르칠 수 있었다. 게다가 옛날의 관복 제도나 중국의 풍속에는 살펴볼 만한 것이 많다. 지금 한족(漢族)의 후예가 중화의 제도를 자랑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 연극 덕분이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보면 배우도 없어서는 안 될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