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위로 이동 |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중국인 수양딸을 둘 뻔하다
줄거리

소낙비를 만나 비를 피하려고 어느 점포에 들어갔는데, 마루 위에는 늙고 젊은 여인 5명이 부채에 붉은 물감을 들여서 처마 밑에서 말리고 있었다. 이때 별안간 말몰이꾼 하나가 알몸으로 뛰어드는데 머리엔 다 해진 벙거지를 쓰고, 허리 아래엔 겨우 헝겊 한 조각으로 가렸을 뿐이었다. 마루에 있던 여인들이 왁자지껄 웃고 지껄이다가 그 꼴을 보고는 모두 일거리를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주인이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을 붉히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걷고 말몰이꾼에게 가서 '철썩'하고 뺨 한 대를 후려쳤다. 말몰이꾼은 말이 허기져 보리찌꺼기를 사러 왔는데, 왜 공연히 사람을 치느냐고 주인에게 따졌다. 주인은 말몰이꾼에게 예의도 모르는 놈이 어찌 알몸으로 당돌하게 구느냐고 물었다. 말몰으꾼이 문 밖으로 도망쳤으나 주인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를 따라가자 말몰이꾼이 주인의 가슴을 움켜잡고 주먹으로 치고 달아나버렸다. 이윽고 주인은 무척 아파하며 돌아왔다. 주인에게 부드러운 얼굴로 말을 걸었더니 하인이 무례했다며 사과했다. 주인은 못생긴 자신의 딸을 데리고 나와 내게 절을 시키고 수양아버지가 되어주기를 청했다. 나는 웃으며 호의는 감사하지만 나는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 한번 왔다 가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잠깐 맺은 인연이 나중에는 서로 그리워하는 괴로움이 될 것이라 부질없다 말했다. 주인은 그래도 계속 수양아비가 되어달라고 청했으나 나는 사양했다. 만일 한 번 수양딸을 삼으면 돌아갈 때 으레 연경에서 좋은 물건을 사다 주며 정표를 삼아야 한다. 이런 사실은 말몰이꾼들 사이에 항상 있는 일이라고 한다.

번역문

길에서 소낙비를 만났다. 비를 피하려고 어느 점포에 들어갔다. 종업원이 차를 내 오고 대접이 좋았다. 비가 한동안 멎지 않고 천둥소리가 드높아졌다. 그 점포의 앞마루가 제법 넓고 뜰도 1백여 보나 되었다. 마루 위에는 늙고 젊은 여인 5명이 부채에 붉은 물감을 들여서 처마 밑에서 말리고 있었다.
이때 별안간 말몰이꾼 하나가 알몸으로 뛰어드는데 머리엔 다 해진 벙거지를 쓰고, 허리 아래엔 겨우 헝겊 한 조각으로 가렸을 뿐이었다. 그 꼴은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매우 흉측했다. 마루에 있던 여인들이 왁자지껄 웃고 지껄이다가 그 꼴을 보고는 모두 일거리를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주인이 몸을 기울여 이 광경을 내다보고는 얼굴을 붉히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걷고 말몰이꾼에게 가서 ‘철썩’하고 뺨 한 대를 후려쳤다. 그러자 말몰이꾼이 말했다.
“말이 허기가 져서 보리찌꺼기를 사러 왔는데, 당신은 어째서 공연히 사람을 치는 것이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이 녀석, 예의도 모르는 놈! 어찌 알몸으로 당돌하게 구는 거냐?”
말몰이꾼이 문 밖으로 도망쳤으나, 주인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비를 무릅쓰고 그를 뒤쫓아 갔다. 그제야 말몰이꾼이 몸을 돌이켜 “왝!”하고 소리를 내면서 주인의 가슴을 움켜잡고 주먹으로 쳤다. 주인이 흙탕물 속에 나가 넘어지자 말몰이꾼은 다시 양가슴을 한 번 걷어차고 달아나버렸다. 주인이 꿈쩍도 하지 못하고 마치 죽은 듯 가만히 있다가, 이윽고 일어나서 무척 아파하며 비틀거리면서 걸어왔다.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었으나 분풀이할 곳이 없어서 씨근대었다. 돌아와서 곱지 않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는데, 입으로 말은 못하나 그 기세가 매우 사나웠다. 나는 그럴수록 넌지시 눈을 내리뜨고 얼굴빛을 가다듬어서 함부로 범하지 못할 늠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다음 다시 얼굴빛을 부드럽게 해서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하인이 매우 무례해서 이런 일을 저질렀습니다. 다시 마음에 두지 마시지요.”
그러자 주인이 곧 화를 풀고 웃으면서 말했다.
“도리어 제가 부끄럽습니다. 선생, 다신 그 말씀 마십시오.”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다. 오래 앉아 있자니 몹시 답답하였다. 주인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8〜9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애를 데리고 나와서 내게 절을 시켰다. 아이 생김새가 퍽 못났다.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제 셋째 딸년입니다. 전 사내아이를 두지 못했습니다. 보아하니, 선생께선 너그러우신 어른 같은데, 진심으로 이 아이를 선생께 바치겠나이다. 수양아버지가 되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나도 웃으며 말했다.
“주인의 호의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일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외국에서 온 사람으로, 이번에 한번 왔다 가면 다시 오기 어렵습니다. 잠깐 사이에 맺은 인연이 나중에는 서로 그리워하는 괴로움으로 남게 될 뿐입니다. 한갓 부질없는 일이오.”
그러나 주인은 그래도 굳이 수양아비가 되어 달라고 청했다. 나 역시 굳이 사양했다. 만일 한 번 수양딸을 삼으면 돌아갈 때 으레 연경에서 좋은 물건을 사다 주며 정표를 삼아야 한다. 이런 일은 사실 말몰이꾼들 사이에서 항상 있는 일이라고 한다. 씁쓸한 웃음만 나는 일이었다.
비가 잠시 멎고 산들바람이 불었다. 곧바로 일어나 문을 나가자, 주인이 문까지 나와서 읍하고 작별 인사를 했다. 제법 섭섭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청심환 1개를 내주었더니, 그는 연거푸 사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