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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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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가 가증스럽다
줄거리

연일 멀리 행진하였기에 가마를 매는 군사들과 말이 매우 피곤하여 더 이상 행진하기가 어려워 태평거 9량을 빌려, 삼사와 역관 등이 나눠탔다. 그리고 짐 싣는 수레 3량을 빌려 행장을 전부 실을 수 있었는데, 수레 주인이 우리의 형편이 급한 것을 알고서는 평소의 10배나 더 대가를 요구하였다. 이때 봉황성장군이 심중에 왔다가 생색내기 위해 값을 삭감하여 주었다. 이에 차주가 불만을 품고, 말과 외모가 가증스러운 무뢰배 1명을 보내어 차부 9명을 거느리게 하였는데, 이 무뢰배가 갈 길은 바쁜데 5리마다 말을 쉬게하고, 10리만 가면 술을 사오라고 요구하여 지체되었다. 이에 재촉을 하면 진흙이 뭉쳐 진행이 어렵다는 둥의 핑계를 대니, 모두들 분하게 여겼다.

번역문

맑음.
초저녁에 출발하여 성 밖에서 10리 지점에 있는 탑원(塔院)에서 숙박하였다.
연일 참(站)을 지나쳐 멀리 행진하였기 때문에 가마를 매는 군사들과 말이 매우 피로하였다. 그러므로 형세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길을 달려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태평거(太平車) 9량을 빌려서 삼사(三使)와 막비(幕裨)와 역관(譯官)이 나눠 탔다.
성경(盛京)의 부도통(副都統) 성책(成策)은 만주 사람이다. 짐 싣는 수레 3량을 보내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행장을 모두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쌍교(雙轎)와 부졸(扶卒)과 역마(驛馬)는 바로 북경으로 보냈다.
수레를 빌릴 때 수레 주인이 우리 형편이 급한 것을 알고는 빌려 주는 대가를 이전에 비해 10배나 높게 불렀다. 봉황성(鳳凰城) 장군이 때마침 심중(瀋中)에 왔다가 우리에게 생색내기 위하여 9명의 차부(車夫)를 가두고는 값을 삭감해 주었다. 차주는 유감을 품고서 동(佟)이란 성을 가진 무뢰한 1명을 불러서 9명의 차부를 거느리게 하였다. 동이란 자는 스스로를 정황(正黃)의 기하(旗下)라고 했는데 말과 외모가 가증스러웠다. 9명의 차부들은 모두 그가 시키는 대로 가고 멈추기를 반복 하였다. 그래서 5리만 가면 반드시 말을 쉬게 하고 10리만 가면 반드시 술을 사라고 요구하여 가는 곳마다 지체하였다. 그렇게 하여 때로 차부에게 빨리 달리라고 꾸짖으면 동이란 자가 대신 대답하였다.
""진흙이 뭉쳐 움직이지 않는데 어찌합니까? 차부들이 가엾습니다.”
이를 듣고서 일행 중 몹시 분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