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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이야기 조각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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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섬에 도착해서 도적을 만나다
줄거리

큰 섬에 이르렀을 때 밤 열시 쯤 임대라고 하던 놈이 무리 20명을 창과 작두를 들고 나타나 배 안으로 쳐들어왔다. 제일 우두머리 도적이 글을 써서 금은보화를 내놓으라고 했다. 우리들은 금은보화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자 짐을 뒤졌는데, 짐 속에 있는 옷가지와 배 안 사람의 양식과 물건을 죄다 찾아서 그들의 배에 싣고 가버렸다.

번역문

이날은 잠깐 흐렸다가 잠깐 비가 오기도 하더니, 바다 빛깔이 다시 허옇게 되었다. 신시(申時: 오후 3〜5시)에 병풍을 친 듯이 잇닿아 있는 큰 섬에 이르렀다.
…(중략)…
이경(二更: 오후 7〜9시)쯤에, 낮에 만났을 때 자칭 임대(林大)라고 하던 놈이 자기 무리 20여 명을 거느리고 왔다. 그놈들 중 어떤 놈은 창을, 어떤 놈은 작두를 들고 있었는데, 활과 화살은 없이 횃불을 들고 우르르 뭉쳐서 우리 배 안에 마구 들어왔다. 제일 우두머리 도적이 글을 써서 보였다.
“나는 관음불(觀音佛)이다. 네 마음을 환히 꿰뚫어 보고 있다. 너희들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으니 모두 꺼내어라.”
내가 대답하였다.
“금과 은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처음부터 가지고 오지 않았다.”
우두머리 도적이 말하였다.
“네가 벼슬아치라면 금과 은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내가 자세히 찾아보겠다.”
애초에 나와 정보ㆍ이정ㆍ김중ㆍ손효자 등은 제주도가 바다 건너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갔다 오는데 정해진 기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사철 의복 몇 벌을 가지고 갔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두머리 도적은 큰 소리로 그 무리들에게 시켜서 나와 아전들의 짐 속에 있는 옷가지와 배 안에 있는 먹을 양식과 물건을 죄다 찾아서 그들의 배에 싣고 가버렸다. 그놈들이 남기고 간 것은 오직 바닷물에 흠뻑 젖은 옷과 몇몇의 서책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