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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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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편없는 역관들 때문에 한탄하다
줄거리

방물량을 감축해주는 이준문서 중에 기록된 방물의 종류가 세폐의 문서와 다르다고 하였다. 수역은 본래부터 문서의 두서를 몰랐기 때문에, 승문원의 관리 강우문이 따라가서 대답했다. 전례에 의거하여 그렇게 한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역관은 중국어에 능통하지 못했고, 청나라 측 통관의 우리말 실력도 역관의 중국어 실력과 마찬가지로 분명하지 못해 강우문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없었다. 예부의 관리가 우리 의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애썼지만, 끝내 대화가 막혀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수역은 뇌물을 많이 주면 무사하게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장관은 문서에 착오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으므로, 수역을 불러 대답을 잘하지 못한 것을 꾸짖었다. 하지만 수역은 수긍하지 않았다. 정사가 서장관의 말을 듣고 다시 문서를 가져오라 해서 살펴보았는데, 정말 잘못된 곳이 없었다. 정사가 재차 수역을 불러 누누이 말씀을 하자 그제야 수역은 우리의 사정을 글로 써서 예부 관리에게 보여주자 하였다. 글을 써주자 수역은 그 글을 가지고 통관과 함께 다시 예부로 갔다. 상통사 장원익이 이 글의 내용대로 말하니, 예부 관리가 비로소 그 말이 옳다고 했다. 이 일은 수역이 통관의 말을 듣고서 대수롭지 않은 일을 대단한 것처럼 꾸민 다음, 이리저리 주선하고 임시방편으로 처리해서 자기의 공로처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수역과 통관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팔기도 하고, 한 마음이 되어 일을 작당한다. 그들이 작당하는 짓을 주변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번역문

옥하관(玉河館)에 머문 지 이미 20일이 흘렀지만, 방물(方物)세폐(歲幣)는 쌓아 두기만 한 채 아직 바치지 못했다. 외교 문서인 표문(表文) 역시 아직 황제께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법률상 12월 22일부터 모든 관청이 업무를 중지하기 때문에 이렇게 지연된 것이다. 새해의 업무는 1월 20일경에 다시 시작된다고 하였다.
며칠 전에 예부(禮部)에서 역관의 수장인 수역(首譯)과 사역원의 관리인 상통사(上通事)를 불러 물었다.
“방물량을 감축해주는 이준문서(移準文書) 중에 기록된 방물의 종류가 세폐의 문서와 다른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수역은 본래부터 문서의 두서를 몰랐기 때문에 승문원의 관리 강우문이 따라가서 대답하였다.
“전례에 의거하여 그렇게 한 것이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강우문은 이치대로 따지며 논쟁했다. 하지만 역관은 중국어에 능통하지 못했고, 청나라 측 통관의 우리말 실력도 역관의 중국어 실력과 마찬가지로 분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강우문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없었다. 예부의 관리가 우리 의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애썼지만, 끝내 대화가 막혀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수역이 사신에게 말했다.
“예부가 이준 문서의 내용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앞으로 일이 순조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마 뇌물을 많이 주면 무사하게 처리될 것입니다.”
사신들은 처음에 그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서장관은 문서에 착오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으므로, 수역을 불러서 대답을 잘하지 못한 것을 꾸짖었다. 하지만 수역은 수긍하려 하지 않았다.
큰형님께서 서장관의 말을 듣고 다시 문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살펴보았는데, 정말 잘못된 곳이 없었다. 큰형님께서 재차 수역을 불러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제야 수역은 우리의 사정을 글로 써서 예부 관리에게 보여주자고 하였다. 큰형님께서 백 씨에게 손수 글을 써서 주자, 수역은 그 글을 가지고 통관과 함께 다시 예부로 갔다.
상통사 장원익(張遠翼)이 글의 내용대로 말하니, 예부 관리는 비로소 “당신들의 말이 정말 옳다.”고 대답하였다.
이 일은 수역이 통관의 말을 듣고서 대수롭지 않은 일을 대단한 것처럼 꾸민 다음, 이리저리 주선하고 임시방편으로 처리해서 자기의 공로처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장원익이 예부의 낭중(郞中)과 대화할 때에 수역과 통관들은 그저 먼 곳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일이 해결되자 통관이 말했다.
“우리들이 수역과 힘을 합쳐 힘을 쓴 덕분에 일이 무사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참으로 가소로운 노릇이었다.
사신 행차에 있어 크고 작은 일에 대해 모두 수역이 권력을 쥐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중국의 통관 이하의 사람 중에서도 수역의 말에 따르지 않는 이가 없었다. 통관들은 관례에 따른 예단을 받는 것 말고도, 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수역에게 요구한다. 수역은 사신에게 말해서 모두 주게 한다. 이때 수역은 통관의 횡포가 심하기 때문에 요구하는 대로 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협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통관에게 줄 때는 도리어 생색을 내면서 말한다. 통관은 수역이 자기들을 팔았다는 것도 모르는 채, 수역이 아니면 물건을 얻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통관은 수역에게 아부하고 결국 두 사람은 한마음이 된다. 그들이 작당하는 짓을 주변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수역의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므로, 사람을 골라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옥하관 안에서 물건을 매매할 때 값을 결정하는 일, 사행에서 거두는 물건의 양을 결정하는 일, 쓸 만한 노비를 골라내는 일 등 모든 것이 수역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 상인과 역졸(驛卒)들에서부터 옥하관에 있는 중국인들까지 모두 수역을 마치 주인처럼 대한다. 정세태(鄭世泰)같은 인물도 수역의 말을 거스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관세를 담당하는 난두(攔頭)들도 이번 사행에서는 수역에게 전례 없는 후한 대접을 했던 것을 보면, 수역은 두 나라의 권한을 다 쥐고 있다고 할 만하다.
사신이 어떤 일에 대해 물으면, 수역이 대답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은 입을 열지 못했고, 수역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그대로 따라서 이야기했다. 그래서 수역이 사실을 감추려고 마음만 먹으면 사신은 일절 들을 수가 없었다. 정말 한심스런 일이었다.
…(중략)…
역관 중에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자가 1〜2명 정도 있었다. 조금 잘하는 역관도 중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10마디에 2〜3마디는 분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쪽에서 말하는 것을 저쪽에서 알아듣지 못했고, 저쪽에서 말하는 것을 이쪽에서 알아듣지 못했으니, 지켜보기에 갑갑했다.
두 나라의 실정이 오직 통관과 역관에 의지해야만 소통될 수 있는 상황인데, 역관은 이 모양이었고 청나라 측 통관도 우리말을 잘하지 못했다. 말이란 완벽하게 갖추어 말해도 다 이해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지금 역관들은 몇 마디만 골라서 말할 뿐이니, 복잡한 사안의 경우 어떻게 실정을 소통시킬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무슨 문제가 터지면 이치를 따져 논쟁하려고 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무조건 뇌물을 줘서 해결하려고만 한다.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예전에 듣기로, 중국인은 원래 욕심이 많은데다 요즘엔 기강이 해이해져서 어떤 일이든 뇌물로 해결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 직접 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마음이 밝고 도량이 크다. 잘못된 일은 아주 능숙한 언변으로 꾸며도 믿지 않지만, 옳은 일은 처음에 오인했더라도 이치에 맞게 해명하면 곧바로 의혹을 푼다.
이번 일로 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문서만 보고 오인했지만, 장원익의 말을 듣고 곧바로 의혹을 풀어 버리고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따르지 못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