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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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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행록 정보에 대한 내용
사행록 정보 테이블
제목 연행일기(燕行日記) 지은이 성이성(成以性)
사행당시직급 서장관(書將官) 기록연대 인조23
기록언어 한문

『연행일기(燕行日記)』는 1645년 성이성(成以性)이 사은 겸 진하사(謝恩兼進賀使)의 서장관이 되어 북경을 다녀오면서 남긴 일기이다. ‘사은’은 소현세자를 영구 귀국시키는 조처에 대한 것이고, ‘진하’에 대해서는 성이성은 순치제의 등극을 축하한다고 적은 반면, 정사였던 인평대군은 뒷날 청나라의 하북(河北) 평정을 축하하는 것으로 추억하고 있다. 성이성의 문집 『계서유고(溪西逸稿)』1권에 실려 있다.
『연행일기』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병자호란의 상흔과 명ㆍ청 교체기의 혼란이 감지된다. 4월 20일 심양에서 영구 귀국하는 봉림대군(鳳林大君)의 행차와 만나 7일 동안 해후의 정을 푸는 즐거운 장면과 함께 속환(贖還)을 간절히 바라는 조선인 포로들의 장면, 봉림대군을 수행하던 한흥일(韓興一)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지는 명나라 황족의 비참한 최후가 겹쳐지고 있다.
북경에 들어온 지 사흘 만에 소현세자의 부음(訃音)을 들으면서 슬픔에 빠진다. 청나라에서 보내는 조문사보다 먼저 도착해야했기 때문에 도착 9일 만에 귀로에 올랐다. 이에 앞서 하인배들이 가져온 인삼이 문제가 되었다.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이들은 하인 명목으로 들어온 상인으로 추정되는데, 통역관 정명수(鄭命守)를 비롯한 청의 관리들은 인삼은 휴대 금지 물품이라며 240근을 압수해 간다. 인평대군이 명나라 때의 관례에 따라 가져온 것이라고 항의하자, 정명수는 처벌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다시 돌려주지는 않았다.
한편 이전 동지사가 북경에 1달을 체류하는 것을 보았고, 또한 대군의 행차는 장마가 그치고 맑은 가을날에 출발한다는 관례를 알고 있는 역관들은 무역을 서두르지 않았다. 하지만 소현세자의 부고가 전해지면서 27일 상복을 갈아입을[成服] 때까지 관소를 나가지 못하였고 29일에 출발하게 되자, 28일 단 하루 동안 교역이 허락되자 군관ㆍ역관ㆍ하인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